이번 주 개봉작 중 가장 눈에 뜨이는 영화는 김수현 감독의 데뷔작 ‘귀여워’다. 이 영화, 사연 많다. 촬영을 시작한 건 2002년. 원래는 2003년에 개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여차저차하여 2004년 막바지에 관객과 만나게 되었고, 어쩌면 이 영화는 올해 가장 독특한 작품으로 기록될 것 같다. 장수로는 전직 박수무당이다. 그는 아이가 안 생긴다며 자신을 찾아온 여인네들에게 직접(!) 씨를 뿌렸던, 그래서 용하다고 소문났던 인물이다. 그에겐 배다른 아들 세 명이 있다. 첫째 963은 퀵서비스맨, 둘째 개코는 견인차 기사, 셋째 뭐시기는 방금 출소한 철거 전문 조폭. 그들의 단란한(?) 가정에, 도로 위에서 뻥튀기 팔던 순이라는 여자가 들어오면서 1:4의 묘한 애정관계가 생겨난다.‘귀여워’는 에밀 쿠스트리차의 ‘집시 영화’를 연상시킨다. 다 쓰러져가는 철거촌의 동굴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장수로 가족은 도시를 표류하듯 살아간다. 길 위를 달리는 그들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집시 같은 존재이며, 시도 때도 없이 황당한 판타지를 꿈꾼다(순이가 밍키로 변하는 장면은 압권 중의 압권). 촬영된 지 시간이 꽤 된 이유로 이 영화엔 청계고가나 주변의 철거촌이 등장하는데, 그 스산한 풍경 또한 이 도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귀여워’는 팬시 혹은 럭셔리 이미지로 포장되어 ‘날 것’을 잃어버린 채 살아왔던 최근 한국영화에 야생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이 영화에선 한국영화가 리얼리즘이라는 화두에 집중했던 1980년대를 연상시킨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판타지를 들이댄다. 작년에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가 묘한 감흥을 줬다면 올해는 ‘귀여워’가 있는 걸까? 뭐시기 역을 맡은 정재영의 연기와 장수로 역으로 배우 ‘데뷔’한 장선우 감독의 ‘연기 아닌 것 같은 연기’가 볼만하다.
너무 ‘귀여워’ 얘기만 늘어놓았나? 또 다른 개봉작을 소개한다면 이규형 감독이 12년 만에 만든 극영화 ‘DMZ, 비무장지대’가 눈에 뜨인다.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쓰러진 시점을 전후로 펼쳐지는 이 영화는, 80년대 청춘영화의 흥행사 이규형 감독이 자신의 군 생활을 토대로 만들었다. 안타까운 건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는 욕심. 여러 요소들이 썩 보기 좋게 어울리진 않는다.
‘클린’은 장만위(張曼玉)의, 장만위에 의한, 장만위를 위한 영화. 장만위는 이 영화에서 처음으로 ‘모성’이라는 영역에 발을 내디딘다. 한때 남편이었던 올리비아 아사야스 감독은 장만위를 위해 시나리오를 썼고, 그녀는 고통스러운 삶 속에서 희망을 바라본다. 올해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영화. 장만위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다.
‘노트북’은 잔잔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그러면서도 달콤한 ‘무공해 멜로드라마’다. 소박한 감동에 목말랐던 관객이라면 볼 가치가 있다. 다소 생소한 느낌의 ‘삼사라’는 ‘잔다라’의 종려시가 좀더 성숙해진 영화. 불교적 고행의 세계관과 속세의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수도승의 곁에, 종려시는 욕망의 여인으로 존재한다. 인도와 파키스탄 사이 라디크 지역의 자연 경관이 인상적이다. /월간스크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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