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성이냐 자율성이냐" 우리당과 한나라당의 사립학교법 개정안의 차이는 이 한 마디로 요약된다. 우리당이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은 "사학은 사회의 공공 재산"이라는 관점에서 사학의 공공성과 경영권의 분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반면 한나라당이 17일 발표한 개정시안은 사학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동시에 경영 투명성을 높인다는 게 요지다.사학재단 이사회 개방 및 학내 자치기구의 법제화 여부에 양당이 화력을 집중해 대치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당은 사학재단 이사회의 3분의1 이상을 학교운영위원회(대학은 대학평의원회)가 추천하도록 하는 개방형 이사제 도입과 자율기구인 교사(교수)회와 학부모회, 학생회 등 자치기구들의 법제화를 주장하고 있다. 또 학운위·대학평의회를 심의기구로 격상시키고, 인사위의 징계위에 교사(교수)회 추천인사가 참여해 재단의 전횡을 방지하는 등 재단 이외 교육 주체들의 경영참여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그렇게 되면 사학의 자율성이 약화하고, 사학을 일부 교육단체 및 기구의 힘겨루기 장으로 전락시킬 것"이라며 이사 추천방식과 자치기구·운영위 위상은 현행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양당은 ▦비리 임원의 복귀 제한을 5년으로 연장 ▦교원 채용 시 공개전형 의무화 ▦ 친족이사 비율 제한을 4분의1로 확대 등엔 의견접근을 보고 있으나 앞선 두 가지 문제에 걸려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우리당은 "4대 법안 중 사학법에 대한 국민 지지도가 가장 높다"며 이번 정기 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여당 안대로라면 본회의 처리는 물론 교육위 상정도 몸으로 막을 것"이라고 공언해 현재로선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단지 우리당이 23일 종교재단이 설립한 사학에 한해 건학 이념에 맞는 인사만 개방형 이사로 임용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수정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타협 여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학법 개정에 대한 여당의 집착에 비추어 추가 양보 안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사학재단들과 일부 단체의 저항이 여전히 필사적인데다 이를 의식하고 있는 한나라당도 여당의 타협모색에 아직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처리전망은 밝지 않은 게 사실이다.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 사립학교법 개정史
재단이사회 권한을 둘러싼 사립학교법 개정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963년 제정된 사립학교법은 1980년과 1990년, 크게 두 차례에 걸쳐 큰 변화를 겪었다.
사학 재단의 이사회 권한이 막강했던 사학법은 1981년 국보위 시절 재단 권한이 대폭 축소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최근 사학재단으로부터 큰 반발을 샀던 ‘교원임면권의 학교장 부여’도 이때 도입됐었다. 학교장이 교원인사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교원을 임명토록 했고, 설립자의 배우자 및 직계 존 비속의 총학장 취임도 금지시켰다. 이는 80년 ‘민주화의 봄’ 당시 사학 비리로 인한 학내 분규가 끊이지 않자 전두환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학내 민주화 요구를 부분 수용한 결과다.
그러나 사학법은 90년 노태우 정권에서 재 개정돼 재단 권한이 다시 막강해졌다. 교원 임면권이 다시 재단에게 넘어갔고, 이사장 배우자와 존 비속의 총학장 취임도 가능해졌다. 또 학교법인이 감독청의 허가 없이도 기본 재산을 임대할 수 있도록 했다.
99년에도 사학 재단의 요구가 반영된 일부 법개정이 이뤄졌다. 비리 사학에 파견된 임시이사의 재임기간을 2년 이내로 제한하고, 비리로 물러난 재단 이사가 2년 후 복귀가 가능토록 개정돼 사학 비리 근절을 오히려 방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 지병문 열린우리당 국회 교육위 간사
-개방형 이사제가 도입되면 생각이 다른 이사들 때문에 건학 이념이 훼손될 것이라는 지적이 있다.
"개방형 이사는 교사와 학부모, 지역사회 인사들로 구성 된 학교 운영위가 추천하는 사람이다. 교사와 학부모들의 시민의식을 믿지 않겠다는 것인가. 교사와 학부모들이 건학 이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재단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것 아닌가. 개방형 이사제는 학교구성의 실질적 주체들의 의견을 반영하자는 것이다. 물론 그 수가 3분의 1이기 때문에 이사회 지배권은 여전히 재단측이 갖는다. 이사회 일부 개방에도 반대하는 것은 재단의 전횡을 방치하자는 얘기다. "
-이사는 궁극적으로 경영을 책임지는 자리인데 개방형 이사들이 경영문제를 감당할 수 있나.
"지금 학교는 아무리 나쁜 짓을 해 돈을 빼돌려도 부도가 나지 않는다. 학교운영은 대부분 등록금과 정부 보조금에 의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따 낸 예산을 빼돌리고, 교사를 채용하면서 착복하는 등 비리를 해결하는 것이 시급한 문제다. 건강하게 운영되고 있는 학교라면 개방형 이사를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
-학교 운영위가 심의 기구화하면 전교조 등 특정 인사들에 의해 장악된 학운위와 재단측의 결정사항이 달라져 교내 분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학운위는 학교 운영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심의할 뿐이다. 재단 이사회가 최고 의결기구다. 학운위의 심의는 재단 결정에 대해 아무런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다만, 학운위가 심의기구화 하면 현안이 공개됨으로써 학교 운영이 투명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등록금과 정부보조금으로 운영되는 학교운영 사항이 공개되지 않은 채 재단 뜻 대로 밀실에서 운영되는 게 낫다는 말인가."
송용창기자
■ 이군현 한나라당 제5정조위원장
_헌법재판소는 ‘사립학교=국·공립 학교’라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재단 전입금은 미미하고 국고 보조금과 등록금으로 운영되는데도 사학이 개인 소유라 할 수 있나.
"자유시장경제 하의 사유재산 여부는 등기부등본을 뗐을 때 누구 소유로 돼 있느냐 이다. 헌재 판결은 모든 학교가 같은 교육을 하고 교원의 지위도 국·공립에 준한다는 뜻이지, 설립자나 운영 방식, 경영 철학까지 같다는 게 아니다.
사학 설립 땐 경영권을 보장한다고 해놓고 이제 와서 교원 등과 경영권을 공유하겠다고 하면 누가 사학을 설립하겠나. 현행 사학법은 ‘사학은 공공재’라는 정신에 의거해 소유자의 권한을 충분히 제한하고 있다."
_권한이 이사장과 이사회에 집중돼 비리가 끊이지 않는다. 학교운영위의 심의기구화나 교사회·학부모회 등의 법제화를 반대하는 것은 비리 사학을 두둔하는 것 아닌가.
"학운위를 심의기구로 하면 이사회와 충돌해 의사결정과정이 혼란에 빠질 수 있다. 교사회 등을 법제화하면 전교조, 한교총 등과의 힘겨루기로 갈등이 발생할 것이다.
전체 사학이 부패했다고 매도할 게 아니라 비리 사학은 발본색원하고, 건전사학은 육성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예·결산 공시제 등 사학 회계의 투명성을 높이는 장치들을 개정시안에 포함시키고, 비리 임원의 복귀 제한을 5년으로 연장했다."
_선진국의 사립학교도 개방형 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다.
"그런 나라들은 사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돼있다. 사학법도 한국처럼 규제 중심이 아니다. 개방형 이사제로 법적 책임이 없는 인사들에게 사학 경영을 맡겼다가 망가지면 피해자는 결국 학생들이다."
최문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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