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을 하면서 3가지 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광고를 두 배 많이 하고 경쟁자보다 5% 더 잘하고, 소액 동업자를 위해 항상 양보한다는 원칙을 금과옥조로 여겼다. 덕분에 내가 세운 D학원은 하루가 다르게 명성이 높아졌다.나는 여기에 몇 가지를 추가했다. 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직원이어서 학원 운영에 직접 나설 수 없었다. 때문에 학원 운영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했다. 나는 ‘원장에게 맡긴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켰다.
지금은 손을 뗐지만 나는 30년 넘게 학원을 운영했다. 그 긴 세월 단 한 명의 강사도 추천한 적이 없다. 강사의 강의 시간을 한 번도 조정한 적이 없다.
학원 강사의 수입은 어느 강의실에서 어떤 시간에 무슨 과목을 배정 받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이런 이유로 학원 설립 초기인 1970년 여름 강사들이 학원주인 내게 찾아와 청탁을 시도하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아무리 청을 해도 소용없다. 잘 하건 못 하건 모든 걸 원장에게 맡겼다. 절대 간섭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 원칙은 나와 원장에게 모두 득이 됐다. 나는 학원 운영 문제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 좋고, 원장은 소신 대로 일할 수 있었다. 강사들이 내게 원장을 바꿔야 한다고 호소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면 나는 "원장이 이런 결점이 있고 저런 잘못을 했다는 말에 전혀 놀라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다 장점과 단점이 있다. 하지만 원장은 사심이 없다. 학원 운영을 소명으로 알고 밤낮없이 그 문제에 골몰해 있다. 자잘한 잘못 때문에 원장의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고 타일렀다.
박찬세 원장은 나의 오랜 벗이다. 52년 부산에서 친구 소개로 인연을 맺은 그는 아주 독특했다. 애주가라 술을 즐겼는데, 알코올만 들어가면 걷잡을 수 없는 다른 사람으로 돌변하기 일쑤였다. 대낮에 술에 취해 원장실 집기를 집어 던져 부수고, 수업중인 강사를 끄집어 내 고래고래 고함을 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나 본심이 맑고 공명정대한 사람이었다.
내 생각에 원장의 첫 번째 자질은 훌륭한 강사를 발견해 마음 놓고 강의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또 수입이 적고 곤란한 말단 강사를 인간적으로 도와주고, 학원이 본질적으로 사람을 교육하는 곳이라는 기본 태도를 가져야 한다. 이 점에 관해 박 원장은 더 보탤 게 없는 적임자였다. 그는 매사 사사로운 이익이 아니라 학원과 강사들을 위해 일했다. 고결한 인격의 소유자로 그를 깊이 아는 사람들은 마음속으로부터 좋아하고 공경했다. 술 먹고 난동을 부리는 일은 당연히 결점이다. 그러나 그가 원장을 하는데 치명적인 하자로 보이지는 않았다. 마지막으로 내가 적용한 원칙은 원장과 부원장에게 경제적으로 응분의 보상을 하는 일이었다. 나는 많은 회사를 만들고 사람들에게 일을 맡겨왔다. 맡은 사람들은 두 가지의 서로 다른 태도를 보였다. 한 타입은 회사를 전적으로 맡겼으니 고맙다, 그러니 열심히 일해 보답하겠다는 사람이다. 반면 모든 일은 내가 했고 대주주는 한 일이 없으니 이 회사는 실질적으로 내 것이어야 한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다. 박 원장과 김종순 부원장은 분명 두 번째 타입에 속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밉지 않았다. 그래서 상당한 비율의 지분을 나눠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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