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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백신高 이낭희 교사/ "문학 시간에는 교과서를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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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산 백신高 이낭희 교사/ "문학 시간에는 교과서를 버려라"

입력
2004.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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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2시 경기 일산 백신고 2학년 4반 교실. 졸음과 사투를 해야 하는 6교시 종이 울렸다. 국어 시간. 칠판 옆 대형 모니터에서 플래시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은은한 음악이 깔린다."가난한 열 아홉 형제 중 열 여덟번째로 태어난 캐나다 총리 장 크레티앙은 선천적으로 한 쪽 귀가 먹고 안면근육마비로 말이 어눌했습니다. 선거 유세 때 누군가 소리쳤어요. 한 나라를 대표하는 총리의 신체적 장애는 치명적 결점이라고…. 그는 단호하게 답했습니다. 나는 말은 잘 못하지만 거짓말은 안 합니다."

교사 이낭희(38)씨의 나레이션이 끝나자 교실은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의 한 장면처럼 학생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눈빛 하나하나는 초롱초롱했다. 이 교사가 ‘지금 이 순간 나의 생각은?’이라는 항목으로 짧은 에세이를 쓰라고 한다. 책에 나온 글을 선생님이 읽고 설명하는 것을 받아쓰는 여느 국어 수업과 전혀 다르다.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 선생님을 꿈꿔 온 이 교사는 15년째 이런 수업을 계속해 이제는 교육계에서 ‘문학선생님’으로 통한다.

그는 첫 시간에 학생들에게 하는 말은 "교과서를 버려라!"이다. "입시용으로 배우는 문학이란 얼마나 괴롭고 병든 것입니까? 문학은 지식이 아닙니다. 김소월의 시를 시집이 아니라 수능 점수 잘 받기 위한 문제풀이에서 접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받아쓰기 수업에 길들여진 학생은 문제 해결이나 비판 능력도 제로가 됩니다."

이 교사는 고려대 국어교육과를 졸업하고 처음 부임한 문산여고에서부터 손수 쓴 수업자료로 가르쳤다. 수업 시간에 작가에 대해 먼저 언급하지도 않는다. 상상력과 스스로 탐구하는 자세를 키워주기 위해서다. 학생들은 한 학기가 끝날 쯤이면 시나 소설을 스스로 분석한 작품해설집을 하나씩 갖게 된다.

그의 문학 수업은 사이버 공간에서도 계속된다. 2000년 교사로는 처음으로 문학사이트 ‘이낭희의 산책 문학여행(www.nanghee.com)’을 열어 창작 지도에 나섰다. 1999년 출간한 ‘0교시 문학시간’은 이미 교육 현장에서 문학 입문 필독서가 됐다.

"전국의 학생들로부터 많을 때는 하루에 20여 통씩 시, 수필 등이 옵니다. 평가를 보내느라 새벽 2, 3시에 잘 때가 많지만 아이들의 문학열정이 느껴져 너무 즐겁습니다." 초등 3, 6학년인 두 딸은 "엄마가 놀아주지 않아 섭섭하다"고 할 정도다.

처음에는 일부에서 ‘실전 문제 풀 시간도 모자란데 웬 문학이냐’는 불평도 있었다. 하지만 함께 한 문학 체험에 감화돼 갔다.

이 교사는 고3 남학생이 보내 온 시 ‘아버지가 흔들립니다’를 보았을 때 정말 보람을 느꼈다. 그리고 답글을 보냈다. "… 흔들리는 아버지가 외롭지 않으신 것은 아버지를 위해 어깨 내어드릴 수 있는 님의 따뜻한 가슴이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 교사는 오늘도 제자들에게 생선을 주기보다는 고기 낚는 법을 깨우쳐 주고 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고3 남학생이 보내 온 시 ‘아버지가 흔들립니다’

아버지는 열 시가 되면 학교에 오십니다./ 회사 1톤 트럭/ 처음에는 부끄럽고 창피했는데/ 오늘은 열 시가 되어도/ 트럭이 없습니다./ 휴대폰으로 연락했더니/ 아버지는 교문 옆에서/ 떨리는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아버지가 술을 한잔했습니다./ 오직 자식 둘만 바라보는 아버지가/ 독한 술을 한 잔 했습니다./ "마음이 괴로워 혼자 뭇다."/ 아버지 눈은/ 구슬피 달빛을 흘립니다. /술에 취했는지 괴로움에 취했는지/ 팔짱 끼고 있는 아버지가/ 나를 잡고 흔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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