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부터 3년에 걸쳐 대리시험을 공모한 것으로 드러난 주모(20·여)씨와 김모(23·여)씨가 만난 것은 2002년 10월. 당시 광주 S여고 3학년이었던 주씨는 인터넷 채팅사이트 ‘대학생활방’에서 S여대 1학년인 김씨를 만나 친해진 뒤 자연스럽게 대학생활 얘기를 하면서 서울소재 대학 진학을 꿈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대학수학능력시험 모의고사 성적은 200점대 중·후반(400점 만점)을 맴돌았고 결국 주씨는 수능에서 370점대 후반을 받았던 김씨에게 대리시험을 부탁하게 됐다.그 해 8월 가정형편 때문에 대학에서 제적당한 뒤 서울 용산구 청파동의 5평 남짓한 지하 월셋방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꾸려나가던 김씨에게도 주씨의 제안은 떨칠 수 없는 유혹이었다.
결국 김씨는 그해 11월 광주에서 첫 대리시험을 쳤고 그 대가로 16회에 걸쳐 600만원을 받았다. 주씨는 공직자인 어머니와 중국에서 사업하는 아버지를 뒀지만 고3 때도 공부 대신,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한푼 두푼 모아 자금을 조달했다. 하지만 성적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형편없었고 주씨는 목표했던 대학생활을 뒤로 미뤄야 했다.
재수에 돌입한 주씨는 수능이 다가오면서 또다시 650만원을 주며 대리시험을 의뢰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 궁여지책으로 광주 J간호대에 등록했지만 ‘무조건 서울로 가고 싶다’는 허황된 꿈 때문에 바로 취소했다. 결국 대리시험의 달콤한 맛에 빠져 버린 주씨는 대학 등록금 등 명목으로 부모로부터 받아 둔 629만원으로 올해에도 김씨에게 대리시험을 맡겼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안경을 쓰고 통통한 편인 주씨에 비해 얼굴이 길고 마른 체형인 김씨가 감독관의 의심을 샀던 것. 먼저 경찰에 잡힌 주씨는 처음에는 올해에만 대리시험을 의뢰했다고 말했지만 뒤늦게 잡혀온 김씨와의 대질신문에서 3회에 걸쳐 대리시험을 보게 했다는 사실을 실토했다.
광주=안형영기자 ahnhy@hk.co.kr
■ 부모는 몰랐을까?/ 브로커 개입 의혹은?
주모(20·여)씨가 3년간 대학수학능력시험 대리시험을 의뢰한 것으로 드러난 가운데 주씨 부모의 대리시험 사전 인지 여부에 대해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주씨가 3번의 대리시험을 대가로 김씨에게 건넨 사례금은 모두 1,897만여원. 주씨는 경찰에서 "2002년과 지난해는 아르바이트로, 올해는 모 간호대에 등록했다 취소한 뒤 반환받은 등록금과 2학기 납부금으로 사례금을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 돈이 주씨가 아르바이트로만으로 벌이들이기에는 지나치게 거액이라는 점에 주목, 부모의 개입에 대해 조사하고 있다.
이와 관련, 주씨의 어머니 지모(47)씨는 "딸이 대입 단과반 학원을 다닌다고 해 실제로 그런 줄로만 알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에서 브로커가 개입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김씨는 한 인터넷 채팅 사이트 ‘대학생활방’에 자신 명의의 ID로 접속해 주씨를 만났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 사이트에는 김씨 ID가 없는 것으로 확인돼 제3자가 개입했을 개연성이 커지고 있다.
광주=안경호기자 kha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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