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돔(Condom)이란 용어가 어디서 유래했는지는 정설이 없다. 다만 17세기 영국 찰스 2세의 주치의 콘돔이 왕의 어지러운 엽색 행각으로 고귀한 혈통이 혼탁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양의 창자로 피임기구를 만들어 바친 데서 비롯됐다는 얘기가 가장 그럴 듯 하다. 주치의 이름이 Cundum 또는 Quondam 으로 엇갈리지만 여러 기록에 그렇게 나와 있다. 실제 영국 더들리 성터에서 1647년 만든 것으로 보이는 수제품 콘돔이 여럿 발굴돼 이를 고고학적으로 뒷받침했다. 콘돔이 국제 공통용어가 된 바탕일 것이다.■ 그러나 어느 사회나 내놓고 입에 올리기를 꺼리는 대표적 용어가 콘돔이다. 섹스와 관련된 때문이지만, 피임과 성병 예방이 원래 도덕적 종교적으로 옳지 못한 관계를 전제한 탓이 크다. 가톨릭 교회와 이슬람 사회는 아직 콘돔 사용을 못 마땅하게 여긴다. 이에 따라 성병이 그렇듯이 흔히 다른 비유적 은어로 바꿔 부른다. 여러 언어권에서 고무, 모자로 지칭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영국인들은 프랑스를 끌어대 ‘프렌치 레터스’(French letters)라고 하고, 프랑스인들은 거꾸로 ‘영국 비옷’(English raincoats)이라고 속삭인다.
■ 콘돔을 가리키는 은어는 제법 멋진 것도 있다. 우리의 모자와 같은 뜻인 영어의 보닛(Bonnet)이나 프랑스어의 카포테(Capote)가 그 것이다. 그러나 이 것은 예전에 진짜 모자처럼 머리 쪽에만 씌우던 콘돔을 지칭한 데서 비롯됐고, 진짜 모자와 헷갈릴 수 있어 널리 쓰기엔 한계가 있는 셈이다. 이렇게 보면, 중국인들이 만든 ‘保套’란 용어가 역시 절묘하다 싶은 데 우리가 빌려 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에이즈퇴치연맹이 콘돔의 새 이름을 짓는데 그야말로 국민적 지혜를 모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 무려 7,000가지 제안 가운데 선택된 새 이름 애필(愛必)은 발음하기 쉽고 뜻이 분명하며 세련되고 참신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평가됐다. 언뜻 우리 말로는 어색한 느낌이지만, 인터넷 유행어에 비춰보면 젊은 세대에 어필할 수도 있겠다 싶다. 에이즈 예방에 긴요한 콘돔 사용을 기피하는 현상이 내놓고 부르기 곤란한 이름 때문은 아니다. 여러 연구에 따르면 역시 비옷 입고 샤워 하는 듯한 착용감과 성에 대한 무지가 주된 요인이다. 어쨌든 새 이름까지 정한 뜻을 살려 특히 젊은 세대의 건강한 성의식을 높이는 데 도움되기 바란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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