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내전(1992~1995)은 역사와 정치가 만들어낸 부조리한 전쟁이다. 같은 하늘아래 함께 부대끼며 살던 사람들이 조상들이 만들어낸 증오와 위정자들의 야욕에 휘둘려 서로 총부리를 들이댄 비극이었다. ‘노맨스랜드’(No Man’s Land)는 보스니아내전 한 구석에서 벌어진 웃지 못할 희극적 상황을 통해 20세기말 이성의 시대에 발칸반도를 뒤흔든 광란의 실체에 접근한다.밤안개 속에서 살육의 들판을 동료들과 헤매다 세르비아군의 공격을 받은 보스니아 병사 치키. 참호 속에 떨어져 겨우 목숨을 건졌지만, 살아서 돌아갈 길이 막막하다. 교전 결과를 확인하기 위해 수색을 나왔다가 치키에게 사로잡힌 세르비아 신병 니노. 앞이 깜깜하기는 마찬가지다. 실신했다 깨어나 지뢰를 깔고 누운 사실에 경악하는 치키의 전우 체라. 옴짝달싹 못하고 구원을 기다려야 하니 이보다 더 나쁠 수는 없다. 각자의 아군도 두 손 든 극한 상황에 닥친 세 사람은 공존을 모색하다가도 공멸을 향해 치닫기도 한다. 이들 앞에 나타난 유엔평화유지군과 기자들. 과연 그들은 죽음의 문턱에 선 세 사람을 구해낼 수 있을까.
‘노맨스랜드’는 풍자로 가득 차 있다. 지뢰 위에 누운 체라는 작은 충격이 가해지면 언제라도 폭발할 ‘화약고’ 보스니아의 숙명을 상징한다. 참호라는 폐쇄된 공간 속에서 서로를 위협하며 어느 쪽에 전쟁의 책임이 있는가 윽박지르는 장면은 분쟁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 지 보여준다. ‘현상유지군’이나 다름 없는 유엔평화유지군을 통해 반인륜적 사태에 호들갑을 떨지만 정작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는 강대국을 비꼬기도 한다. 때로 카메라는 줌인하며 전쟁의 잡다한 부분을 잡아내기도 하고 때로는 줌아웃해 전쟁을 둘러싼 풍경들을 조망한다.
2002년 아카데미영화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칸영화제 각본상,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등 수 많은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다. 평론가들로부터 환대 받은 작품은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통념과는 거리가 먼 영화. 제목 ‘노맨스랜드’는 세르비아군과 보스니아군이 대치하고 있는 중간 지대로 ‘누구의 땅도 아닌 곳’을 의미한다. 보스니아 출신 다니스 타노비치 감독의 데뷔작 . 12월 3일 개봉. 전체 관람가.라제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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