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우크라이나 수도 키예프에서는 21일 치러진 대통령 선거 결과에 반발하는 대규모 군중 시위가 사흘째 이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5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유럽연합(EU) 지도부와 긴급 회동을 갖기로 했다. 박빙의 차로 패한 야당 지도자 빅토르 유시첸코 전 총리는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라며 자신이 당선자임을 선언했고, 지지자 50만 명도 격렬한 시위를 펼치는 등 우크라이나는 1991년 구 소련에서 독립한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또 러시아가 친 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당선자의 승리 굳히기에 나선 반면 EU는 선거 부정 의혹을 먼저 규명하라고 공식 요구하는 등 양측의 힘겨루기도 본격화하고 있다.
◆ 동서 지역갈등 이번 사태는 부정선거 시비가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 친 러시아 성향의 여당 지도자인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 당선자를 지지하는 동부의 일부 지역에선 선거명부조차 없이 유권자 한명이 40차례 이상 투표를 하는 등 부정선거가 횡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역사적으로 뿌리깊은 동서간의 지역갈등도 자리잡고 있다. 동부는 러시아계가 몰려있으며,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사용할 만큼 친 러 성향을 보이고 있다. 반면 서부는 서유럽의 영향을 받아 탈(脫) 러시아 민족주의 정서가 짙은 지역이다.
이번 대선은 국가진로를 놓고 러시아 영향권에서 잔존하느냐, 유럽으로 진출하느냐를 놓고 두 후보가 격돌을 펼쳤다. 그런 점에서 이번 사태가 최악의 경우 우크라이나가 동서로 나뉘는 극한 상황까지 발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많다.
◆ 러시아와 유럽의 속내 구 소련 동맹국 중 두 번째로 큰 나라로, 부존자원이 풍부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에겐 ‘유럽의 창’으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나라이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친 러 국가로 잡아두어야 하는 이유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야누코비치 대통령 당선자에게 즉각 축전을 보내 당선을 기정사실화 한 것은 이 같은 속내가 담겨있다.
미국과 EU국가들은 러시아 간섭에서 벗어난 우크라이나의 존재가 자원 확보와 유럽의 협력관계 구축 등에 유리하다고 보고 있다. 이들이 이번 선거를 부정선거로 단정하며 비난성명을 내놓은 배경에도 이 같은 의도가 스며 있다.
◆ 그루지야 사태 재현되나 우크라이나가 시민명예혁명으로 정권을 교체한 그루지야의 뒤를 밟을 지도 관심사다. 키예프 광장의 야당 시위에서도 그루지야 깃발이 눈에 띄었다. 실제로 서부의 르비프주는 24일 여당이 임명한 지사를 축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루지야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우선 당시 에드아르드 세바르드나제 그루지야 대통령과 달리 야누코비치는 탄탄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우크라이나에는 저항의 중추그룹이 없다.
현지에서는 이번 사태를 법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동부의 40여 선거사무소에서 불법선거가 이뤄진 것으로 밝혀진 만큼 사태해결은 법의 심판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이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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