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2년 11월25일 스페인 작가 로페 펠릭스 데 베가 카르피오가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1635년 졸(卒). 16세기 중엽에서 17세기에 걸쳐 스페인 문학은 예외적 풍성함을 누려, 문학사에서는 이 시기를 ‘황금세기'(Siglo de Oro)라고 부른다. 극작가·시인·소설가를 겸했던 로페 데 베가는 세르반테스와 함께 이 시기의 스페인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세르반테스 역시 로페 데 베가처럼 극작가와 시인과 소설가를 겸했지만, 소설 ‘라만차의 돈키호테'의 비중이 워낙 커서 시인이나 극작가로서의 세르반테스는 거의 기억되지 않는다. 로페 데 베가는 그 반대다. 몇 편의 소설들을 남기기는 했으나, 로페 데 베가가 스페인 문학에, 더 나아가 세계문학에 이바지한 장르는 주로 시와 희곡이다. 시인으로서 로페 데 베가는 고전 시인들이나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기의 대가들에게 영감을 얻기는 했으나, 제 작품의 속살을 스페인의 시 전통에 내재된 강렬한 생명력으로 채웠다. 그래서 20세기 시인 라파엘 몬테시노스는 로페 데 베가의 시세계를 가리켜 ‘이탈리아 장식을 한 스페인식 개념'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로페 데 베가는 문학사에서 다른 무엇보다도 극작가로 기억된다. 종교·신화·역사·연애·기사도·풍속 등 소재를 넘나들며 그가 쓴 희곡은 무려 2,200여 편에 이른다고 한다. 그 가운데 연애희극 ‘상대를 모른 채 사랑하다', 사극 ‘국왕이야말로 첫째가는 판관' 등 500여 편이 남아 있다. 스페인 국민극의 창시자로 평가 받는 로페 데 베가는 그러나 그 엄청난 다작에도 불구하고 시공을 초월해 힘차게 파닥거릴 걸작을 거의 남기지 못했다. 그의 명성은 당대에 스페인 국경을 훌쩍 넘어섰지만, 오늘날에는 스페인어권에 갇혀있다. 전업 작가도 아니었고 그래서 작품도 몇 편 안 남긴 세르반테스는 로페 데 베가의 부지런을 비웃고 있을지 모른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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