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삼수생 주모(20·여)씨로부터 620만원을 받고 대리시험을 치른 혐의로 24일 경찰에 자진출두해 조사를 받고 있는 김모(23·여)씨는 고향인 울산에서 최상위권으로 초·중·고교를 졸업한 뒤 서울의 명문 S여대 정치행정학부에 입학한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김씨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학비를 제때 내지 못해 3학기 만에 제적당했다. 더구나 자신이 진 신용카드 빚을 갚지 못해 2002년께부터 고향에 있는 부모가 변제 독촉에 시달리자 이 때부터 집에 내려오지 않았고 결국 대리응시라는 극단의 선택을 했다.이날 밤 늦게 건축 노동일을 마치고 울산의 ‘달동네’로 불리는 남구 선암동의 10평 남짓한 집에 돌아온 김씨의 아버지(47)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했다. 김씨는 "한달 전만 해도 아르바이트도 하며 잘 지낸다고 했는데 집안의 자랑이었던 딸이 이런 범죄를 저지를 줄은 꿈에도 몰랐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김씨는 이어 "죄를 졌으니 처벌을 받아야 겠지만 이게 다 용돈 한 푼 제대로 쥐어주지 못한 못난 부모 탓이니 부디 선처를 바란다"며 "딸을 대신해 어디든 가서 무릎 꿇고 사죄하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대학을 그만둔 김씨는 지난해 12월 인터넷 채팅을 통해 이번 사건의 의뢰인인 주씨를 만나 언니 동생으로 부를 정도로 친해졌다. 이후 8월께 주씨는 "서울 강남지역에서는 1,000만원을 주면 대신 시험을 칠 사람을 구해준다는 데 언니가 대신 봐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고 김씨가 선뜻 동의했다. 김씨는 9월3일부터 7차례에 걸쳐 계좌이체를 통해 주씨에게서 620만원을 받아 이를 방세 등 생활비와 동생 용돈 등으로 썼다.
대리시험을 의뢰한 주씨는 지난해 광주 J간호전문대에 합격한 뒤 가족 몰래 등록을 취소하고 환불받은 등록금 등을 김씨에게 건넸다. 주씨는 경찰에서 "인터넷 사이트에서 대리시험 광고를 보고 고민해왔고 지난해 수능 때도 감독관이 수험표를 제대로 보지않는 등 감독이 허술해 성공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울산=목상균기자 sgmok@hk.co.kr
광주=안형영기자
■ "담임 누구냐"에 대리시험 들통
200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삼수생 주씨 대신, 시험을 치르다 적발된 김씨는 "담임 선생님 이름이 뭐냐"는 감독관의 마지막 질문에 답을 하지 못해 부정행위가 들통났다. 수능일 당시 김씨를 적발한 광주 D여고 시험장 감독관 등에 따르면 교사 2명이 김씨의 인상착의에 이상한 점을 느낀 것은 2교시였다. 이들은 김씨의 외모 등이 주민등록증과 다른 점 등을 수상하게 여겨 복도에 있던 다른 감독관에게 알린 뒤 시험장 분위기를 흐트리지 않기 위해 차분히 기다렸다.
김씨가 제출한 답안지와 응시원서의 필체가 다른 점을 확인한 감독관은 급기야 김씨에게 넌지시 "사진과 얼굴이 많이 다른 것 같네요"라고 물었지만, 김씨는 "살이 많이 빠져서 그렇게 보인다"고 피해갔다.
시험을 모두 마친 후 감독관들 앞에 불려가서도 김씨는 신상질문 등을 곧잘 받아넘겼지만 결국 한 장학사의 질문에 무너졌다. "고교 담임 선생님의 이름을 말해보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없었던 것. 결국 김씨는 대리시험을 쳤다는 것을 실토했고, 620만원 금품수수 사실까지 밝혀지게 됐다.
광주=이진희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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