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부한 사실이지만, 민주사회에서 대통령은 선거에 의해 뽑힌다. 이것이 절차민주주의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선거를 통해 당선된 대통령이 온전한 의미에서 정치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말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학생들에 대한 초임교사의 권위가 경력교사의 그것과 같을 수 없듯, 새내기 대통령이 경륜있는 대통령처럼 시민들에게 권위를 행사하기란 어려운 일이다.권위는 명령을 내리고 복종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다. 물론 이러한 권위는 왕정시대에도 있었고, 또 권위주의시대에도 있었다. 허나 민주화시대의 권위라면 그러한 권위와 다른 점이 있어야 한다. 권위주의시대의 정치권위가 외형상의 복종을 요구했다면, 민주적 권위는 사람들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복종하는, 이른바 ‘심복(心腹)’의 행위를 기대한다. ‘행동의 복종’만으로 만족하기보다는 ‘마음의 복종’을 주문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관점에서 민주시대의 대통령은 사병에 대한 ‘장교의 권위’보다는 환자에 대한 ‘의사의 권위’와 비슷해야 한다. 의사가 환자에 대하여 지시를 하면 환자는 행동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복종한다. 물론 환자는 맹목적으로 의사의 지시에 복종하는 것은 아니며 의사의 처방에 대해 의문도 제기하고 평가를 하면서 복종한다. 따라서 의사의 권위는 ‘열린 권위’가 될 수밖에 없다. 의사는 환자로부터 평가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의사는 환자에게 "왜 의사 대접을 안 해 주느냐"고 물을 필요조차 없다. 좋은 의술을 베풀면 환자는 마음으로 승복한다.
지금까지 보아온 노무현 대통령의 권위에는 두 가지 모습이 있다. 하나는 탈권위주의적 모습이다. 공식석상에서 농담도 서슴지 않을 정도로 소탈하다. "대선 때 약이 올라 7% 성장공약을 내놓았다"고 할 정도로 솔직하니, 시민들에게 다가가는 맛이 있다. 권위주의시대의 대통령에게는 들어보지 못한 말이다.
하지만 ‘닫힌 권위’는 노 대통령의 또 다른 모습이다. 일단 대통령이 됐으면 사람들도 따라오고 언론도 따라오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아 불만을 토로하는 것이다. "언론이 언제 대통령 대접을 해준 적이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하며 헌재의 행정수도이전 위헌결정에 대해 "관습헌법이란 처음 듣는 소리"라고 퉁명스러운 반응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반대세력에 마음을 닫고 있다는 반증이다. 소탈한 대통령이라면 포용적이어야 한다. 또 사람들로부터 마음의 복종을 이끌어내는 민주권위라면 도전과 비판에 열려 있어야 한다.
정치 권위에 대한 복종은 환자가 의사의 지시에 복종할 때처럼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법이다. 환자는 의사가 지시한 약을 먹으면서 결과를 수시로 체크한다. 병세가 호전되는 것 같으면 의사의 권위를 믿지만, 병세가 나빠지면 즉시 약을 중단하고 다른 의사나 병원을 찾아서 불만을 토로한다. 의사의 권위가 절대적 권위가 아닌 것처럼, 대통령의 권위도 절대적이 아니고 항상 평가의 대상이다.
지금 노 대통령과 정부의 권위에 대하여 반신반의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지않다. 부자들은 부자들대로 주눅이 들어 있고 삶이 어려운 사람들은 솥단지를 내던질 정도로 화가 나있다. 노동단체들도 아우성이다. 또 연기금에 문제가 생길까봐 조바심을 내는 사람들도 많다. 우울한 얼굴로 짜증까지 내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마음의 복종’을 하겠는가.
이 정부 들어와 권위주의는 청산되었는데 ‘닫힌 권위’라는 새로운 현상이 부상하고 있음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열린 권위’는 사람들이 부르짖고 있는 소리에 마음을 열고, 비판의 쓴 소리를 적대적 소리로 듣지 않고 양약으로 듣는 권위다. 노대통령이 ‘닫힌 권위’에서 ‘열린 권위’로 바꾼다면, 낮은 지지율이 반등될 것으로 확신한다.
박효종 서울대 국민윤리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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