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김경욱(33·울산대 국문과 교수)씨는 올해로 등단 12년째를 맞은 작가다. 그렇지만 아직도 ‘신세대’라는 열없는 수식어가 심심찮게 따라다닌다. 이는 문단 서열로는 까마득하지만 나이로 치자면 맞먹어도 될 듯한 또래 작가들과 도거리로 대접받는 영향도 있겠고, 그가 소설에서 집요하게 빌어 써 온 영화며 음악, 그림, 인터넷 등 대중문화적 요소의 이미지에 기인한 것일 수 있다.또, 이날 입때껏 그가 무관(無冠)이었다는 점이 은연중에 작용했을지 모른다. 상(賞)이란 좋든 궂든, 그런 통과의례 같은 의미도 지니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늦은 밤 수상 소식을 전했고, 그는 천진한 어투로 "기쁘고 감사하다"고 했다. 하지만, 뻔한 축하와 사례가 오간 길지 않은 시간동안 그는 지금?남몰래 숱하게 추체험했을 감동의 격정을 가라앉힌 듯 차분해져 있었다. "한 시기를 지난 뒤부터 제 소설이 습작기를 벗어났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욕심만큼 인정 받지 못했어도 상심하지는 않았어요."
그 시기란 "써지지 않아 쓸 엄두가 안 났고, 그렇다고 스타크래프트(인터넷게임)만 하고 살 수는 없어 책만 들입다 읽던" 1998년 이후의 두어 해라고 한다. ‘슬럼프’라고들 하는 시련기다. "그 전 시기가 이미지에 의존한 글쓰기의 기간이었다면, 그 뒤부터는 내 삶과 주변의 삶이 글로 옮겨지더군요."
삶과 분리된 채 다만 나란히 놓여지기만 하던 하위 장르적 장치들을 삶의 일부로 녹여 들인 힘.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싶게 하는 대목인데, 소설은커녕 글쓰기에 대한 욕심조차 없던 그가 어느날 소설가가 된 것도 대학시절 실연(失戀)의 아픔에서 비롯됐다는 것 아닌가. "그 시절 까뮈를 읽으며 소설을 배웠고, 최인훈과 김승옥 오정희 이청준씨의 작품을 보며 작가적 세기(細技)를 다듬게 된 것 같습니다."
그의 소설은 대체로 외롭고 쓸쓸하고 허무한 삶을 반추하고 있다. 그 허무함은 삶이 놓인 공간, 후기자본주의사회의 잉여성으로 하여 더 도드라져 보이는데, ‘장국영이 죽었다고?’에는 빚에 쫓겨 가정마저 잃고 방송국에 사연을 보내 이런 저런 경품을 타 모으는 재미에 맛을 들인 ‘나’가 등장한다. 딜레마는 주워들은 사연들로 심심풀이 삼아 응모하는 글은 데꺽 당첨돼 없어도 그만인 물건들은 쌓이는데, 정작 꼭 필요한 물건을 타려는 욕심에 ‘나’의 이야기로 응모한 글은 뽑히지 못한다는 점이다. 잉여 속의 결핍, 자신의 정체성을 입증하는 일조차 타자를 통해서만 가능한 메커니즘은 현대성이 강요하는 구조적 모순이자 당대인의 존재론적 고독에 닿아있다.
연전에 낸 작품집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에 등장하는 숱한 죽음의 양태들을 두고도 그는 "신용불량자의 자살처럼 사회가 배태하고 제도화한 새로운 죽음의 동기들을 통해 현대성의 본질을 찾고자 했다"고 말했다. "다양한 문화 장르들이 삶의 판타지를 유포하는 자리를 우직하게 버티고 서서 ‘신데렐라는 없다’고 정직하게 말하는 존재가 문학(소설)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도저한 허무주의자는 2년 전 대학에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예전만은 못하지만, 틈만 나면 영화 포스터를 기웃거리고, ‘너바나’나 ‘짐 모리슨’을 들으며 산다. 또 그는 축구광인데 99년 ‘동네축구’에서 센터링 헛발질 한 방으로 오른쪽 무릎 연골이 파열돼 두차례 수술을 받고 ‘선수 생명’이 끝났지만 대신 스타크래프트 실력은 일취월장해 ‘동네선수급’은 된다고 자랑한다. "오락 그게 또 희한해요. 프로게이머도 있잖아요. 노동과 놀이의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든, 잉여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이죠."
그가 여러 상을 내리 받더라도, 생물학적 나이와도 무관하게 지금처럼 늘 젊었으면 좋겠다. 신세대란 항상 시간의 전위에 서서 시대의 감성을 빛내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 김경욱은?
1971년 광주에서 태어나 서울대 영문과를 나오고
같은 대학 국문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1993년 중편소설 ‘아웃사이더’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타며 등단했다.
작품집으로는 ‘바그다드 카페에는 커피가 없다’(96년) ‘베티를 만나러 가다(99년)
‘누가 커트 코베인을 죽였는가’(2003년),
장편소설 ‘아크로폴리스’(95년) ‘모리슨 호텔’(97년) ‘황금사과(2002)’가 있다.
■ 수상작 ‘장국영이 죽었다고?’ 주요대목
…그 누구와도 관계하지 않음으로써 나는 겨우 존재할 수 있다. 특히 이곳에 오는 자들은 관계 따위에는 관심이 없다. 구석진 자리부터 찾는 그들은 관계하지 않고 훔쳐볼 뿐이다. 로그아웃하면 모니터에 자동으로 표시되는 사용시간에 맞는 금액을 그들은 알아서 지불하고 나간다. 그들이 유명 연예인의 최신 누드동영상을 보거나 생면부지의 또 다른 ‘그들’과 온기 없는 대화를 나누거나 배틀넷에 접속해 스타크래프트를 하거나 간에 시간당 요금은 균일하다.
…매표소 전광판의 디지털 시계가 정확히 아홉시 정각을 표시했을 때였다. 갑자기 나와 같은 차림을 한 사람들이 하나 둘 매표소 앞으로 모여들었다. 극장 앞의 신호등을 건너오는 사람들 틈에 검정 양복을 입고 마스크를 착용한 남자 둘이 보였다. 얼굴의 대부분을 가리고 있는 마스크가 아니었다면, 추심원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복제된 것처럼 비슷해 보임으로써 오히려 군중들 속에서 두드러졌다.
…그들은 오랜 연습으로 단련된 단역배우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소화하고 사라졌다. 매표소가 다가옴에 따라 거짓처럼 가슴이 뛰고 신경은 터질 듯 팽팽해졌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그것은 실로 오랜만에 맛보는 활력이었다. 그 뜻밖의 활달한 기운은 세상의 어떤 의미에도 복무하지 않았으므로 나를 더욱 흥분시켰을 것이다.
■ 심사평/ ‘生의 원초적 명랑성’ 산뜻이 포착
문학상이란 독자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문단 축제의 장이고, 심사란 그 축제의 영예로운 주인공을 뽑는 일이다. 예심을 거쳐 올라온 아홉 편의 단편이 그 후보들이었다.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현재 우리문학의 수준을 보여주는 수작들이었다.
다채롭고 다양한 감수성과 상상력의 공간이 펼쳐져 있었기에,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란 궁극적으로 심사위원들이 지니고 있는 취향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논의는 뜻밖으로 길지가 않았고, ‘장국영이 죽었다고?’의 김경욱 씨가 심사위원 다수의 지지를 받아 올해의 주인공으로 선정되었다. ‘장국영이 죽었다고?’의 미덕은 그 어떤 의미에도 뿌리내리지 못하는 우리시대 젊은이들의 삶의 모습을 다양한 문화적 코드들과 함께 절묘하게 포착해냈募?점에 있다. 하필 만우절에, 알 수 없는 이유로 자살해버린 홍콩스타 장국영이 중심 모티프로 놓여 있고, 여기에 신용불량자가 되어 회사에서 밀려나고 가정조차 깨져버린 한 남자의 삶과, 그 남자가 인터넷을 통해 접속하게 되는 한 이혼녀의 삶이 중첩된다. 이 두 남녀는 같은 날 장국영의 영화를 보았고, 또 같은 날 결혼을 했고, 같은 장소로 신혼여행을 갔었다. 둘 모두 쓸모없는 것들을 기억하는데 비상한 능력의 소유자들이다. 고시원에서 기숙하며 무의미한 나날들을 견디는 남자는 라디오 방송에 사연을 보내 쓸모없는 물건들을 받아내는 게 취미다.
두 남녀가 나누는 대화 속에서 이 쓸모없는 기억들이 연쇄를 이루는 가운데 그 흐름 속으로 돌연 장국영의 죽음이라는 기호가 삽입된다. 그럼으로써 쓸모없는 기억들의 무의미함은 그들끼리 대화를 나누며 새로운 유대와 활기를 만들어낸다. 그 활기가 소설에 마지막에 놓여 있는, 플래시 몹이라는 무의미의 집단적인 퍼포먼스로 발현된다. 그것은 곧, 그 어떤 의미의 흐름으로부터도 벗어나버린 것들의 유대가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순간이며, 그것을 확인함으로써 무의미함과 쓸모없음이 자기 자신으로부터 활기를 획득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김경욱씨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유용성의 세계로부터 시대의 우울 속으로 추방당한 사람들이 새로운 의미와 활기를 포착해내는 모습을 산뜻하게 형상화해냈다. 그럼으로써 그는 우울의 밑바닥을 만져본 사람들만이 증언할 수 있는, 살아 있음 자체의 원초적 명랑성의 한 단초를 포착해낸다. 죽음 속에서 삶을 확인케 하는 그 역설적인 활기가 작품 전체를 휘감고 있는 내팽개쳐진 삶의 적막한 밤하늘 속에서 빛나는 별처럼 흩뿌려져 있다. 아마도 그 빛이 심사위원들의 마음을 흔들었던 듯싶다. 덧붙여 말하자면, 김경욱씨가 올해 발표했던 다른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었던 작가적 저력이 그의 손들을 들어주게 하는데 한 몫을 했다는 점도 밝혀둔다. 그 힘이 문단 전체의 활력을 위한 소중한 밑불이기를 바란다.
문학평론가 김병익 서영채
소설가 이순원 이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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