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10시40분께 광주 C고 3학년 교실. 고3 가운데 30%가 대학수학능력시험 휴대폰 부정행위사건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이 학교는 무척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수업시간이었지만 교사는 들어오지 않았고 학생들도 이리저리 흩어져 잡담을 나누고 있었다.◆ "재수없어 걸렸을 뿐"
창가에서 친구들과 얘기하던 김모(18)군은 "수시접수 때문에 모두들 눈코 뜰새 없이 바쁜데다 이번 사건까지 터져 난장판이 따로 없다"며 "선생님들이 부정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언론 인터뷰도 하지 말라고 당부해 더 이상 말할 수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안모(18)군은 "휴대폰을 이용한 커닝은 이미 잘 알려진 수법이고 다른 학교에서도 평상시 시험 때 많이 활용된다"며 "재수가 없어 우리 학교가 걸렸을 뿐"이라고 말했다. 기자가 학생들을 상대로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학생들 대부분은 입을 다물었고 몇몇 학생湧?인터뷰에 응한 학생들에게 "입 다물어" "선생님 불러"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 운동장에서 만난 2학년 조모(17)군은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과 만나면 부정 행위에 가담한 선배들이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 얘기하는 게 하루의 중요 일과가 됐다"고 털어놓았다.
◆ 학교, 가담자 자체 파악에 분주
이미 언론 등을 통해 부정행위 가담자가 있는 것으로 파악된 학교는 무거운 침묵 속에 사태가 진정되기 만을 바라는 분위기였다. C고 교무실에는 교사 4,5명만이 자리를 지킨 채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를 붙들고 있었다. 한 교사는 "진학 담당교사들이 수험생들을 상대로 부정행위 가담 여부를 자체 파악했지만 추가 가담자를 찾지 못했다"며 "광주시교육청에서도 별다른 지시가 없어 그냥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사태의 본질은 수능 하나만으로 수험생의 모든 능력을 평가하는 대학입시제도에 있다"며 "잘못을 저지른 일부분의 학생 때문에 죄없는 다른 학생들이 똑 같은 취급을 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사건에 학생이 연루된 M고의 한 교사는 "겨우 1명 가담했는데 학교이름이 오르내리는 게 못 마땅하다"며 전화를 받자마자 끊어 버렸다. 경찰 조사결과 가담자가 없는 것으로 파악된 고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 L고 이모 교사는 "일단 지금은 가담자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혹시 나중에 일이 커지지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라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 학부모 "면접 불이익 어쩌나"
광주지역 학부모들은 자녀가 혹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고 있다. 자녀를 서울지역 사범대에 진학시킬 예정인 정모(46)씨는 "수능 점수가 잘 나와도 대학에서 색안경을 끼고 보지 않을지 걱정이 앞선다"며 "이런 지옥 같은 고3을 겪게 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고 넌더리를 쳤다. 고1 자녀를 둔 민모(46)씨는 "시교육청 차원에서 대학의 신뢰를 회복하고 학부모를 안심시킬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 감독관 교사 "일방 매도 말라"
이번 수능에 감독관으로 참여한 광주 모 고교 A교사는 사건과 직접 관련은 없지만 사태가 커지자 죄인이 된 듯해 얼굴을 못 들고 다닌다. 그는 "수험생들을 되도록 안정시키기 위해 큰 부정행위가 아니라면 교사들은 대부분 눈을 감는다"며 "나도 쉬는 시간에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봤지만 그냥 뒀다"고 말했다. 그는 "감독부실에 대한 비판이 높지만 수험생을 배려할 수밖에 없는 것이 감독관의 처지"라고 강조했다.
광주=안형영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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