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적 보수주의의 색채가 날로 짙어지고 있는 미국에서 20세기 성 혁명을 가져온 생물학자 알프레드 킨제이(1894~1956)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를 놓고 사회적 논쟁이 일고 있다.22일 워싱턴 포스트에 따르면 기독교 복음주의 및 가톨릭 단체, 보수적 여성단체 등은 영화 ‘킨제이(Kinsey)’ 에 대한 보이콧을 추진하는 한편 이 과학자에 대한 비판 및 격하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승리를 가져온 핵심세력인 이들은 특히 이 영화의 개봉을 계기로 음란 오락물의 제작을 지원하면 처벌하는 내용의 입법화까지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움직임은 킨제이가 사망한지 50년 가까이 지난 뒤 벌어지고 있는 것이어서 "역사의 시계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사회를 퇴행 시키는 행동"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어떤 경우든 이번 논쟁의 향배는 대선 이후 종교적 도덕주의가 풍미하고 있는 미국 사회의 좌표를 알리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실제로 ‘문화와 가정 연구소’의 로버트 나이트 국장은 "복음주의적 기독교인들과 가톨릭 세력이 지난 대선에서 확인된 정치적 영향력을 다시 과시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12일 상영에 들어간 ‘킨제이’에 대한 논란의 핵심은 학자로서의 킨제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 관한 것이다. 킨제이는 1940, 50년대 두 편의 보고서를 통해 성행위 횟수는 물론 인종별 성기에 이르기까지 성생활을 처음 통계화한 인물이다. 그러나 보수진영은 영화가 킨제이를 비극적 영웅으로 미화하면서 그의 연구결과를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킨제이의 ‘여성의 성적 행동’을 비롯한 연구물이 창녀 등을 인터뷰해 내용을 왜곡한 것이라는 주장도 편다. 보수진영은 킨제이가 ‘성의 선동가’이며, 심지어 이혼과 성병증가, 근친상간이나 포르노물의 범람 같은 사회병리에도 책임이 있다고 본다.
물론 동성애, 매춘, 오르가슴 등 당시 금기시된 주제를 다룬 킨제이의 연구는 표본추출 등의 문제로 신뢰성에 논란이 끊이지 않은 게 사실이다. 그러나 빌 콘돈 감독은 "킨제이의 업적은 바로 평가되어야 한다"며 "보수진영의 비난은 킨제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파괴"라고 일축했다. 학계에서도 "교회가 아무리 기도를 하고 모임을 갖더라도 세상의 도덕적 기준이 킨제이 보고서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 "美 정치·종교 뒤섞여"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22일 미국 대선과정에서 표출된 정치·종교 일치 현상을 비판했다.
슈뢰더 총리는 이날 공영 ADR방송에 출연, "가능하면 종교적 동기에서 정치적 결정들이 이뤄지지 않아야 한다"며 "종교는 사적인 영역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정치가 종교와 뒤섞여 궁극적인 가치가 (정치적 결정의) 동기가 된다면 충분하게 토론할 가능성이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슈뢰더 총리는 ‘미국 정치에서 종교의 영향이 커졌다’는 지적과 관련, 입장을 묻는 질문에서 예상을 깨고 이 같은 비판을 했다. 슈뢰더 총리는 "나에게는 그런 일이 낯설고 이해하기 어렵다"며 "유럽에선 이미 정치적 결정과, 종교의 분리를 보장하는 중요한 조치들이 이뤄져왔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라크 전을 놓고 부시 미 대통령과 이견을 보였던 슈뢰더 총리는 "부시 대통령과 개인적으로 사이가 좋으며, 부시 대통령도 (자신을) 편하게 느끼기 바란다"고 말했다.이태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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