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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커지는 중도세력/ 왜 중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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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커지는 중도세력/ 왜 중도인가?

입력
2004.11.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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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의 중도(中道)그룹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종교 등 여러 분야에서 오랫동안 침묵해온 중간계층이 마침내 전면으로 나서고 있다.최근 간간이 사회통합을 호소해온 국가원로들의 성명에 이어 22일 중도통합을 내세워 출범한 개신교 초교파 모임 ‘기독교 사회책임’도 그런 중요한 움직임의 하나다. 같은 날 창립한 386세대의 ‘자유주의 연대’ 역시 비록 ‘뉴 라이트(New Right)를 표방하긴 했지만 중도적 입장을 포용하려 한다는 점에서 넓게는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접점 없는 갈등으로 표류하고 있는 우리의 암담한 현실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다.

낡은 이념적 대립에 휘둘리고 있는 요즘 상황은 우리 현대사가 빚어낸 불행한 결과다. 한국전쟁 이후 오랜 군사독재정권 체제 하에서 진보적 견해는 항상 체제전복 의도와 동일시됐다. 1980년대 이후 급진세력의 등장은 숨막히는 극우적 이념의 일방성에서 비롯된 것이었고, 최근의 이념쟁투는 그런 역사의 반작용에 의해 빚어진 현상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시대건 사회의 중심에는 중도세력이 있었다. 회색인이나 기회주의자로 백안시되는 것을 꺼려 침묵의 다수로 남아 있었을 뿐이다. 현저하게 균형을 상실하는 상황이 되면 이들은 분연히 일어나 목소리를 냈다. 1987년 6월항쟁에서의 넥타이부대 또한 이들이었다.

현실은 다시 절박하게 중도의 목소리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권이나 이익단체들은 그렇다 쳐도 통합을 지향해야 할 시민사회, 언론들까지 제각기 이념적 편향성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수도 이전, 경제정책 등 모든 현안이 서로 다른 입장으로 재단돼 사회를 분열시키고 있으며, 그리하여 마침내 헌법적 질서조차 이념과 명분의 하위개념으로 전락할 상황에 처해 있다.

중도는 전혀 새로운 이념이나 주장이라기보다 불편부당한 균형감각이자 양 극단을 포용하는 통합과 조정의 기술이다. 어느 한 쪽이 완전히 선하거나 악하다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상대를 인정하면서 여러 입장을 합리적, 실용적 측면에서 따지는 공정한 판단의 방식이다. 갈등을 치유하고 좌초 위기에 몰린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서도 중도세력이 중심 역할을 해야 한다. 우리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중도의 목소리는 그런 의미에서 분명한 희망의 단초다. 이준희기자 junlee@hk.co.kr

■ 우리 사회의 중도그룹

우리 사회의 중도그룹은 본격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게다가 대외적으로 중도를 표방하면서도 실제 내용은 보수, 혹은 진보적 성향이 두드러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나 보수·진보진영의 대립에 대한 국민들의 피로감이 누적되면서 점차 이념과 명분을 배제, 균형적이고 실용적 판단을 중시하는 그룹이 나타나고 있다.

◆ 정계 = 열린우리당 내 26명 의원으로 구성된 ‘안정적 개혁을 위한 모임’(안개모)이 중도 입장을 수용하는 대표 그룹이다. 지난달 말 국정 전반에 대해 중도 목소리를 낸다는 취지로 발족했다. 이들은 4대 개혁입법의 단독·강행처리를 반대하고 야당과의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고 있다. 유재건 의원을 대표로 조성태(전 국방장관), 안병엽(전 정보통신부 장관), 정의용(전 제네바 대사), 김명자(전 환경부 장관), 이계안(전 현대자동차 사장), 이근식(전 행자부 장관), 심재덕(전 수원시장), 박상돈(전 서산시장) 의원 등 관료출신이 대부분이다.

한나라당에서는 ‘새정치수요모임’ (대표 정병국 의원)이 중도그룹으로 분류된다. 국보법의 명칭 변경과 정부 참칭·찬양고무조항 삭제 등 당내에서 가장 진취적인 개정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라크 파병을 논의할 때에도 국회 등원론을 제기하거나, 당의 4대 법안 무조건 저지방침에 이의를 제기하는등 나름대로 일방적 보수입장에서 탈피하려 하고 있다. 당내 소장파인 남경필 원희룡 정병국 의원을 주축으로, 소장개혁파 초선인 박형준 김희정 이성권 정문헌 한선교 등 2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 경제계 = 경제분야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잣대가 워낙 상대적이어서 사안에 따라 입장이 갈리는 게 보통이다. ‘시장경제’의 잣대로는 미국 주주자본주의를 주창하는 참여연대가 가장 보수적이지만, 한국적 기업관행과 경제제도의 개혁을 선도한다는 측면에서는 가장 개혁적이기도 하다. 경제학자들도 마찬가지다. 이정우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장 등도 기업관행과 시장제도에서는 참여연대식 주주자본주의를 수용하고 있으나 사회통합 노동문제에 대해서는 유럽식 분배모델을 수용하는 식이다.

이찬근 인천대 교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등이 만든 대안연대는 재계와 노동계의 합리적 주장을 수용하는 제3의 길을 주장하고 있다. 주주자본주의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재계가 주장하는 재벌과 기업의 일자리 창출, 국부 창출 등의 긍정적 역할을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경영참여 등 노동계의 목소리도 대변하고 있다.

◆ 학계 = 학계의 중도그룹은 자유주의 성향의 학자들이 대변한다. 뚜렷한 이념지향이 없고 세력화를 하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윤평중(한신대) 이상길(연세대)교수, 문학평론가 김명인(황해문화 편집주간)씨 등을 꼽을 수 있고, 계간 문예지에 참여하며 평론하는 과반의 학자들을 모두 중도 성향으로 봐도 무방하다.

한길사가 펴낸 ‘해방전후사의 인식’(전 6권·1979~1989)이 너무 편중됐다는 인식에서 ‘해방전후사의 재인식’(가제) 발행을 구상하고 있는 박지향 이영훈(이상 서울대) 교수도 비판적 자유주의학자로 분류된다.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는 "지금 한국사회는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자유주의를 풍부하게 하고 완성하는 단계로 나가고 있다"며 "자유주의담론의 공감대가 갈수록 넓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유병률기자 bryu@hk.co.kr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최문선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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