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오페라 무대는 대부분 사실적이다. 가끔 지겹기도 하다. 특히 오페라속 사건의 장소를 일러주는 데 그치는 서술적 무대는 상상력을 억압하곤 한다. 그게 불만스러웠던 관객이라면, 북한강변 두물워크샵(경기 남양주)에서 열리고 있는 ‘모던 스테이지 세팅’ 전에서 신선한 대안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이 전시회는 국내외 유명 건축가들이 만든 독특하고 추상적인 오페라 무대를 선보이고 있다. 전시작은 푸치니의 ‘토스카’와 ‘투란도트’, 비제의 ‘카르멘’, 벨리니의 ‘노르마’, 바그너의 4부작 ‘니벨룽의 반지’중 3부 ‘지그프리트’다.
‘지그프리트’의 세트만 실외 조형물이고, 나머지는 실내에 설치한 스크린을 통해 무대의 시각적 개념을 보여준다. 각 작품의 음악이 영상과 동시에 흐르며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하고 있다. 기존 오페라 무대의 관습에서벗어나 눈으로 음악을 듣는 이러한 공감각적 체험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강력한 엔진이다.
젊은 여성건축가 김주령의 ‘토스카’나 영국 건축스튜디오 ‘아세니오 & 마’의 ‘카르멘’, 또 다른 영국팀 ‘OFIS’의 ‘투란도트’는 실제 극장에 올릴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개념화 작업에 가깝다. 김주령은 소리굽쇠를 때렸을 때 일어나는 물리적 진동의 파형과 주인공의 복잡한 심리적 갈등을 컴퓨터그래픽으로 표현한다.
아세니오 & 마의 ‘카르멘’도 컴퓨터작업에 의한 시뮬레이션. 음악을 따라 겹쳐졌다 쪼개졌다 하며 수축과 확장을 거듭하는 곡면의 3차원 입체영상이 이 작품의 배경인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 건축물의 질감과 조형성, 비극적 사랑의 격렬한 파국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OFIS의 ‘투란도트’ 세트는 6mx6mx6m 육면체가 3개씩 3층으로 짜여진 큐빅 형태다. 낱낱의 큐빅은 반투명의 고립된 공간이고, 벽을 따라 미끄러지는 붉은 네온 빛으로 극중인물들의 심리적 소통을 표현한다. 이는 ‘투란도트’를 막힌 공간 막힌 삶의 비극으로 보여주려는 장치.
위 세 작품과 달리 김헌의 ‘노르마’나 전인호의 ‘지그프리트’ 세트는실제공연에서 해볼 만한 현실적인 대안이다. 김헌은 ‘노르마’의 야외공연을 염두에 뒀다.
이 오페라의 배경은 고대 켈트족 드루이드교의 사원과 숲이지만, 그가 고른 장소는 뜻밖에도 서울의 몽촌토성. 토성의 야트막한 언덕과 그 옆의 높고 긴 목조 조형물 그대로를 세트로 쓴다.
그는 기존 오페라 무대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무대가아닌 객석을 유압장치를 이용해 이동시킴으로써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의 지형을 바꾸고, 공기보다 가벼운 기체를 주입해서 허공에 띄운 구름 모양의 덮개에 조명과 음향을 설치하고 그 자체가 하나의 세트이자 음향반사판역할을 하도록 했다.
전인호의 ‘지그프리트’는 두물워크샵 건물의 옥외 테라스, 강으로 나아가는 뱃머리 갑판의 철골 기둥에 설치한 조형물이다. ‘지그프리트’ 중 1막 난쟁이 미메의 동굴을 직사각형의 틀이 계속 겹치며 깊숙하게 들어가는 모양으로 시각화 했다.
거기에 또 다른 직사각형 틀의 중첩된 구조물이 조금씩 각도를 틀어가며 끼어 들어 공간을 확장한다.
이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세트는 이 오페라의 신화적 특성과 동굴의 공간감을 탁월하게 보여준다. 특히 밤 하늘 달빛 아래 조명과 어우러진 모습이 매혹적이고 신비롭다.
건축가들의 오페라 세트작업은 전에 없던 실험이다. 하지만 음악이 소리의 건축물이며, 무대는 평면이 아닌 입체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자연스런 일이기도 하다. 전시회는 28일까지 계속된다. 문의 www.duomul.com (02)516_5834
/오미환기자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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