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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속 한류드라마 열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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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속 한류드라마 열풍

입력
2004.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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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드라마들이 몰라보게 달라지고 있다.한류 스타인 김희선, 권상우를 내세운 ‘슬픈 연가’부터 중화권의 대표적 문화 코드인 무협을 소재로 한 ‘비천무’, 전 세계 수재들이 몰리는 미 하버드대를 배경으로 한 ‘러브 스토리 인 하버드’, 주인공이 일본인가정에 입양되는 이야기를 담은 ‘유리화’까지.

기획 단계부터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한류 드라마’들이 속속 탄생하면서 이야기의 무대가 미국 뉴욕과 LA, 일본 고베, 중국 전역으로까지 넓어졌다. 뿐만 아니라 회당 제작비 2억~3억원을 투입해 HD(고화질)로 화려한영상을 담고 있으며 아시아 언론은 벌써부터 이들 드라마에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한류 열풍에 온 몸을 맡긴 채 매혹의 빛을 발하고 있는 드라마에는 그 광휘만큼 길게 드리워진 그늘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 그 얘기가 그 얘기

겉은 지극히 화려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뻔한 사랑 이야기로 가득하다. ‘겨울연가’ 학습 효과 때문이다.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멜로드라마를 표방한 ‘슬픈 연가’는 친구인 준영(권상우)과 건우(연정훈)가 시각장애인 혜인(김희선)을 놓고 펼치는 비극적인 러브 스토리. ‘유리화’도고아원에서 같이 자란 동주(이동건)과 기태(김성수), 이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은채(김하늘)의 삼각관계가 줄기다.

‘하버드대의 공부벌레들’의 분위기를 끌어들인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와 무협 코드를 빌려온 ‘비천무’도 결국 가슴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기는 마찬가지.

문제는 이들 드라마가 ‘영원 불멸한 사랑’이란 테마를 위해서 한결같이출생의 비밀, 우정과 사랑 사이의 갈등, 재벌, 불치병같은 닳아 빠진 한국드라마의 공식과 이야기 구조를 답습하고 있다는 점이다.

허술하고 비상식적인 이야기를 윤석호 PD 특유의 섬세하고 아름다운 영상으로 커버한 ‘겨울연가’의 성공이 이들 드라마에도 과연 적용될까?

물론 한류 열풍에서 이미 입증됐듯이 국경을 넘어 다양한 문화권 시청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순수한 사랑’만한 것이 없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이 당장은 통할지 모르지만, 소재나 이야기 구조의 진화 없는 ‘멜로 편향’과 끊임없는 ‘자기복제’는 장기적으로 1990년대 초반 홍콩 영화처럼 한국 드라마에 대한 ‘물림 현상’을 낳을 수 있다.

제작사 관계자들로부터 “드라마들이 한류 열풍을 타고 열이면 열 모두 비슷비슷하게 가고 있는데 자칫하다가 현해탄을 넘기도 전에 모두 바다에 빠져 죽을지 모른다”는 고백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 치솟는 제작비와 스타들 몸값

24부작 ‘비천무’ 80억원, 20부작 ‘슬픈 연가’는 76억원, 16부작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는 50억원….

불과 2년 전만해도 드라마의 편당 제작비가 1억원을 넘지 않았던 것에 비하면, 그리고 웬만한 영화의 제작비도 마케팅 비용을 합쳐 50억원 정도인현실에 비춰보면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증가다. 이는 요즘 드라마 제작의 필수조건처럼 돼 버린 해외 촬영과 출연 배우들의 치솟는 몸값에 기인한 바 크다.

현재 어지간한 스타급 주연 연기자의 출연료는 회당 1,500만원 선으로, 고현정의 경우는 컴백작인 ‘봄날’에 회당 2,000만원의 특급 대우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겨울연가’ 성공이후 아시아 시장에서 통할만한 이른바 한류 스타들을 기용해 ‘대박’ 드라마를 만들어 보려는 모험 심리가 팽배해진 까닭이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 제작환경이 과연 이 정도의 투자를 감당할 만한 수준인가에 대해서는 단연 부정적인 시각이 많다. 한 제작사 대표는 ‘‘‘겨울연가’의 성공이후 창투사 등에서 자금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지만 영화와는 시장 규모 자체가 다른 드라마에 이처럼 많은 돈을 쏟아 붓는 게 정상인지 의문이 든다”고 고백했다.

방송사가 외주제작사에 주는 돈이 한정된 상황에서 늘어난 제작비는 PPL(간접광고)과 해외 판매를 통해서 메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무분별한 PPL유치는 드라마의 품질을 떨어뜨릴 가능성이 높고, 해외시장 판매의 경우 미래를 전혀 보장할 수 없다는 점에서 과도한 투자는 결국 거품일 수밖에없다.

▲ 제작 시스템은 제자리걸음

“사전 제작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본이 100% 나와 있어야 한다. 그래야그 대본을 바탕으로 완벽한 촬영 일정을 짜고 그에 따라 효율적으로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다.”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의 제작을 맡고 있는 이진석 PD의 말이다. 본래100% 미국 로케이션을 목표로 했던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는 결국 8부까지만 미국에서 찍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촬영하는 것으로 방향이 바뀌었다.

100% 사전제작을 목표로 하고 있는 ‘슬픈 연가’도 방송사인 MBC에서 방송 일정을 20일 가량 앞당기는 바람에 목표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유리화’의 경우도 12월 1일 방영을 앞두고 3~4회를 찍고 있을 뿐이다.

‘한류’ 드라마들이 규모와 상품성에서 기존 드라마와 차별성을 꾀하고있지만 그간 숱하게 지적돼온 한국 드라마의 제작시스템에 여전히 발목이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쪽대본’과 ‘몰아 찍기’로 대변되는 주먹구구식 드라마 제작 시스템에근본적인 변화를 꾀하지 않는 한 드라마의 품질 향상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수요자 중심의 사전 기획과 완성도 높은 대본 작업, 그리고 효율적인 제작 진행이야말로 ‘한류 드라마’의 지속적인 성공을 뒷받침해줄 힘이다.

/김대성기자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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