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순을 연주하는 내 친구가 있다. 참 커다란 목관악기이지만 여러 개로 분리해서 넣으면 바이올린과 비슷하게 생긴 케이스에 들어가는데 좀 무겁다.어느날, 이 친구가 악기를 가지고 택시에 탔다. "그게 뭐요?" 라고 기사 아저씨가 물었다. ‘바순’이라고 말하면 이런저런 질문에 시달릴 터. 귀찮을 것 같아 "바이올린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기사 아저씨 왈, "무슨 바이올린 케이스가 바순 케이스처럼 생겼다냐."
실화다. 사람들에게 이 놀라운 에피소드를 얘기할 때마다 대중을 얕잡아봐선 안 된다는 말을 꼭 하고싶다. 사실 연주자들은 관객을 자주 무시한다. 연주할 곡을 정할 때 우리는 관객의 반응을 미리 짐작한다.
아주 난해한 현대음악이 아니더라도, ‘너무 무겁거나 정통 클래식이면 관객이 이해하지 못하거나 지루해 하면 어쩌나’ 하고. 그러다 보면 최대한많이 알려진 곡들로 구성한다. 아는 곡이 나오면 관객 반응은 금새 달라지는 게 사실이니까. 문제는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것이냐 이다.
관객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여러가지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도 한다. 대화가 있는 음악회라든지, 관객을 시작 전에 귀족으로 변신시키기 위해 로비에서 장미를 나눠주기도… 하지만 1회성 아이디어로 끝날 때가 많고, 정작 감상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열린' 음악회라고 하는 많은 콘서트들은 지겹게 들어오던 ‘오 솔레미오’에만 '열려'있다. 우리는 깊이 있는클래식을 포기해야만 하는가?
택시 아저씨는 가장 일반적인 관객이다. 바순을 아는 분이면 다르지 않냐고? 하지만 음악회에 오는 사람들은, 모두가 지식까지는 몰라도 '관심'을겸비한 사람들이다. 공짜표로 들어온 사람일지라도, 친구들과 술 마실 시간이나 주말의 명화 볼 시간을 포기하고 오는 사람들이다.
정통 클래식으로 관객을 열광시키는 것은 연주자의 숙제다.
연주자가 작품에 혼을 담고 열정을 다해 연주했을 때, 박수가 터져 나오지않는 것을 본 적은 없다. 세계 정상급 연주자들이 모르는 곡을 연주했을 때, 우리가 박수치는 이유는 그들의 이름값에만 감동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단 한번의 연주로도 그 느낌을 완벽히 전달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다.
대중은 좋은 것을 미리 알지는 못하지만, 좋은 것을 들으면 감동하는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다. 나 또한 한 명의 연주자로써 현악사중주를 연주할때마다 이런 사실에 놀란다.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한 올의 끈도 없이 공허한 공기만이 존재하지만 연주자가 느끼는 열정을 관객이 느끼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술의 신비함’인 것이다.
/현악사중주 콰르텟X 리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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