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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퓨전 동양화의 '화려한 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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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퓨전 동양화의 '화려한 외출'

입력
2004.11.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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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과 종이는 동양화가 고유의 언어다. 굳이 그림쟁이를 두고 동양화가니,서양화가니 하는 식으로 가르자면 말이다. 그러나 정작 작가들은 그런 편의상의 구분에 갑갑함을 느끼는 것 같다.올 가을 개인전을 갖는 중견 동양화가 강경구, 사석원씨는 종이 대신 캔버스에, 먹 대신 아크릴물감과 유채물감을 자유자재로 갖고 놀았다. 두 작가의 서양화 실험에는 특별한 의도가 담겨있다. 그림을 그리는 도구의 한계를 넘어서자는 의지이다.

▲ 강경구 '물길'전

30일까지 학고재아트센터에서 개인전 ‘물길’을 열고 있는 강경구(52ㆍ경원대 교수)씨는 대학1년 이후 30여년 만에 캔버스에 그림을 그렸다. “먹만으로는 물의 다양?층위를 표현하기에 부족함을 느꼈다”고 털어놓는다.

몇 겹으로 겹쳐 칠한 물감에서 나오는 부피감을 주기에 먹은 너무나도 평면적이어서, 그런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고른 게 아크릴 물감이다.

1990년대 초ㆍ중반 ‘서울풍경’‘숲’연작을 그려온 강씨는 이번에는 물에 마음이 꽂혔다. 지난해 2월 인도여행 중에 들른 갠지스강에서 받은 충격의 파장이다.“강물 위로 뭔가 붉은 게 내려오기에 나중에 보니 시체더라”는 기억으로부터 그는 인생을 읽어낸다.

‘물길’ 연작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한데 엮은 ‘이름 모를 인간의 일대기’ 같기도 하다. 창을 열고 물을 바라보는 사람으로 물길을 열고, 그 물길 속에서 인간들은 걷고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고, 배를 타고 가다가 뛰어내리기도 하고, 잠기기도 하고, 어디론가 다가간다.

그리고 붉게 타오르는 물길을 표현한 ‘물길-건널 수 없는 강’은 생사의마지막 갈림길을 그려낸 듯 하다. “물에서 인생의 길을 보았다”는 그에게 물길은 삶과 죽음이 만나고 갈리는 지점이다. (02)739-4937

▲ 사석원 유화전

인기화가 사석원(44)씨는 유화 신작 50여 점을 선보이는 개인전을 24일부터 인사아트센터에서 갖는다. 사씨는 동양화를 전공했으나 먹만을 고집하지는 않는 작가다.

고답적인 동양화로는 관람객과의 거리를 좁혀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크릴물감을 쓰거나 오브제 작품을 내놓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왔지만, 이번처럼 유화만으로 전시를 꾸리기는 처음이다.

사씨의 그림은 쾌활하고 천진난만하다. 동물그림은 특히 더 유머러스하다.

‘몸집은 작지만, 고집이 세고 힘도 세서 매력적’인 당나귀는 먼동이 틀무렵, 붉은 꽃을 잔뜩 지고 서있고(‘먼동’), 꽃을 따먹은 양의 뱃속에서는 그 꽃이 무럭무럭 자라 활짝 피어 향기가 몸 밖까지 진동하고(‘꽃을 먹은 양’), 매화 두 송이에 놀라 꽁무니 빼는 수탉(‘매화에 놀란 수탉’)도 나온다.

겸재 정선의 금강산 그림을 참고했다는 가로 4m55㎝의 대작 ‘풍악’이나‘인왕산’의 사계 등 산수는 처음 선보이는 소재다. 사군자로 시작해 화조, 그리고 산수에 이르는 동양화의 코스에서 막바지에 이른 셈이다.

붓을 한달음에 휘둘러 수묵화적 분위기가 나는 ‘매화보고 놀란 수탉’ ‘바다새’ 같은 작품도 있지만, 대부분 물감을 두텁게 발랐다. 물감을 팔레트에 개어 쓰는 게 아니라, 캔버스 위에서 직접 짜고 나이프로 뭉개버렸다.

‘풍악’은 물감이 마르려면 4년은 기다려야 할 거라고 말할 정도로 두껍게 물감을 뒤집어썼지만, 동양화 산수에서 볼 수 있는 골기가 살아있다. “이불처럼 세상을 물감으로 덮고 싶다. 두텁게, 아주 두텁게 덮고 싶다”고 작가는 말했다. 12월6일까지. (02)736-1020

/문향란기자iam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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