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한다는 데 한미 두 나라 대통령이 합의한사실이 큰 뉴스가 됐다. 재선에 성공한 부시 대통령이 한층 강경하게 나올것이란 우려가 컸던 만큼 당연한 반응일 수 있다.정상회담에 앞서 노무현 대통령이 북한 핵개발은 생존을 위한 것으로 이해할 측면이 있다고 말해 우리사회 보수세력은 물론이고 미국의 심기를 어지럽힌 점에 비춰 북핵 문제가 다시 고비를 넘겼다고 안도할 만도 하다. 한미 관계에 새 이정표를 세웠다는 외교부장관의 과장된 평가도 이런 맥락에서 나온 듯 하다.
그러나 되돌아서서 생각하면 북핵 문제와 한미 관계에서 달라진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평화적 해결원칙은 늘 하던 말이다. 6자 회담 틀을 강조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하기로 했다지만 그 것도 모호하다. 굳이 회담성과를 말한다면 부시 대통령이 우려되던 강경 발언을 하지 않은 정도가 아닌가 싶다.
그래도 그게 어디냐고 하겠지만, 멀리 칠레에서 열린 APEC 정상회담 막간에 노 대통령을 잠깐 만난 부시 대통령이 과거 워싱턴을 찾은 DJ에게 했던것처럼 내놓고 뺨을 때릴 리는 없다. 부시는 정상회담 직후 북한 핵 폐기원칙을 다시 강조, 기존 입장을 확인했다. 우리 사회만 공연히 불안감을 떠들다가 단숨에 모든 게 잘 풀렸다고 즐거워하는 형국인 것이다.
형편이 이런데도 정부는 회담성과를 부풀리는 데 열중한다. 반대로 보수세력은 노 대통령이 부시에게 야단 맞지 않은 것에 시무룩한 표정이다. 양쪽 다 문제의 본질이나 해법과 거리 먼 미로를 헤매면서 여론에만 신경 쓰는 것으로 비친다. 10여년 우여곡절을 겪고서도 북한과 미국의 움직임에 일희일비하는 꼭두각시 놀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밖에 없다.
1990년대 초 북핵 문제가 불거졌을 때 오스트리아 빈의 국제원자력기구(IAEA)에서 진행된 북핵 논의를 7차례인가 취재하면서 늘 안타까웠던 것은핵 문제를 이슈화한 북한과 미국보다 우리 사회가 훨씬 요란 떨며 강온 두극단을 어지럽게 오간 것이다.
막연한 통일기대를 떠들던 사회가 한반도를 냉전시대로 되돌린 문제의 본질은 헤아리지 않은 채 우리끼리 다투는데 열심인 것이 한심했다.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론조사에서 지역국가 국민가운데 북핵 문제를 가장 적게 우려하는 것으로 나올 정도로 변했다. 그러나 나라와 여론을 이끈다는 이들의 행동양식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은 것이 문제다.
누가 뭐라고 해도 북핵 문제의 본질은 북한과 미국의 수십 년 적대관계에있다. 북한이 핵개발을 무기로 미국에 생존을 보장하고 경제적 활로를 열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북폭 계획까지 세운 클린턴 행정부가 제네바 합의에 이른 것도 이런 북한의 논리를 수용한 데서 출발한다.
지금도 미국 내 온건론은 미국이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되풀이 다짐하는 차원을 넘어, 북한과의 적대 해소를 위한 분명한 계획을 제시할 것을권고하고 있다. 문제의 근본을 외면한 채, 대치를 무력으로 해결하지 않겠다는 말만 하는 것은 문제 해결을 미루는 것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런 시각에서는 미국이 6자 회담 틀을 만든 것도 북한이 요구하는 양자대화와 직접 타결을 기피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한반도 문제 논의에 우리가 빠질 수 없다는 입장에서는 바람직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데이바지한 측면도 분명 있다.
미국은 한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를 끌어들여 공동보조를 취하는 모양을 갖추면서도 문제 해결은 지연시킨 것에 만족한다는 미국 전문가들의 지적을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우리와 주변국이 어떻게 중재를 시도하든 간에, 해법은 결국 미국이 쥐고있는 것이다. 이를 무시한 채 북한 설득과 압박이 관건인양 떠드는 것은 10여 년 웃고 울며 되풀이한 꼭두각시 놀음을 계속하자는 것과 다름없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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