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불량자(신불자) 제도의 폐지로 신불자들이 ‘공인된 불량 경제주체’라는 딱지를 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제도개선에도 불구하고 신불자들이 볼 실질적 혜택이 거의 없는데다가 신불자로 인한 우리 경제의 주름살 등 근본적 문제점은 달라질게 없어 정부의 책임 회피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바뀌는 내용
일단 신용정보 이용법 개정안이 ‘신용불량자’를 ‘연체자’라는 명칭으로 대체하기로 하면서 신불자라는 용어는 사라지게 됐다. 은행연합회가 한 달에 한번씩 명단을 취합, 전 금융권에 배포하는 신불자 통계 집계 관리 방식도 함께 사라진다.
이에 따라 ‘30만원 이상 3개월 연체’라는 일률적 기준에 의해 신불자로 등재되는 동시에 모든 일선 금융회사에서 거래가 전면 중단되는 불이익을 보는 사례는 다소 줄어들 전망이다. 신불자의 일괄 집계 및 공유가 불가능해져 금융회사들이 누가 신용불량 대상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신불자를 대상으로 한 강도 높은 채권추심도 수위가 다소 누그러질 것으로 보인다.
과다 연체자 산정 및 제재 기준도 다양화할 전망이다. 예를 들어 A은행은 30만원 이상 3개월 연체, B은행은 50만원 이상 6개월 연체 등으로 제재 기준을 개별적으로 책정하게 된다.
이 경우 일부 은행에서 이미 시행중인 자원봉사 연계 신용회복 지원 제도 등 개별 금융회사들의 지원책이 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A은행에서 ‘연체자’로 등록되더라도 B은행과는 거래가 가능할 수도 있게 된다.
물론 신불자 제도 폐지가 채무 사면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은행연합회가 통합 관리해왔던 신불자 기록이 사라진다는 의미일 뿐 개인 대출, 연체 기록은 각 금융회사별로 계속 관리된다. 금융회사에 따라 지금보다 더 엄격한 연체자 기준을 세울 수도 있는 것이다.
◆ 부작용 없나
금융권에서는 시기상조라는 우려도 적지 않다. 신불자 정보를 대체할 수 있는 금융권 개인신용정보회사(CB)가 내년 중반 이후에나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라 당분간 연체자 관리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것.
신불자에 대한 실질 혜택이 거의 없다는 주장도 있다. 금융회사들이 한 동안 대출심사를 더욱 엄격히 할 전망인데다가 CB가 활성화하면 금융회사간 연체 정보공유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수익성을 고려할 수 밖에 없는 금융회사의 특성을 고려하면 장기적으로 연체자들의 금융거래에 더 많은 제한이 따를 가능성도 있다. 신불자 지원에 부담을 느낀 정부가 명분만 챙긴 채 실질 지원에서 발을 빼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CB가 활성화할 경우 개인소득, 대출금 상환내역 등의 우량정보도 개인정보 범위에 포함돼 좀 더 체계적인 대출자 관리가 가능해진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신불자 제도 폐지가 개인신용정보 관리 선진화를 위한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옹호론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 제도 폐지 배경
은행 등 금융회사 대출금 중 30만원 이상을 3개월 이상 연체한 신불자는 9월말 현재 366만여명에 달하고 있다. 신불자 제도는 당초 개인신용평가의 기초정보 제공이라는 취지에서 도입됐지만 금융제재를 위한 획일적 기준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적지 않은 상황이다.
1개 금융회사에서 신불자로 등재되면 다른 금융회사와의 거래도 끊기는 등 불이익이 과도한데다가 개인의 소득수준이나 연체 경위 등에 대한 고려 없이 너무 경직적으로 운용되어온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신불자가 과도하게 양산돼 소비침체 가속화 등 경제에 약영향을 미친다는 비판도 잇따랐다.
정부 역시 배드뱅크 등 신용회복지원 제도를 잇따라 내놓았으나 근본적인 치유책은 되지 못했다. 결국, 제도의 부작용과 정부 대책의 실효성 부족에 금융회사 차원의 자체 정보 관리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추가되면서 제도 폐지라는 결론이 도출된 것으로 보인다.
박진석 기자 jseo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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