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엄 금강, 정토의 아침이 열렸다. 반 백년 숨죽인 끝에 터진 요령 소리에 금강산 제봉(諸峰)이 소스라치듯 깨더니, 관음연봉 끝자리 문필봉 언저리로 눈길을 모은다. 거기 신계사(神溪寺)가 우뚝 섰다.대웅보전 회향법회가 열린 20일 오전 9시 강원 고성군 외금강 신계사. 대한불교 조계종 스님들이 법당에 모여 앉았다. 부처님께 씌워졌던 한지 고깔이 벗겨지고, 붓을 든 원로회의 의장 종산스님의 손끝이 떨린다. 절 마당에 모여 앉은 수백의 스님과 신도들도 숨을 죽였다. 점안(點眼)의식. 불안(佛眼)이 열리던 순간, 빗방울 듣던 하늘이 거짓말처럼 개더니 구름장 뚫고 서광이 비치기 시작했다.
금강산이 어떤 산인가. 일만이천 봉우리 마다 불법의 관을 썼고, 겹주름 골골마다 크고 작은 보리도량이 섰던 2,000년 한국불교의 성지요, 민족의 영산, 문화의 터전 아니던가. 신계사는 법흥왕 5년(519년), 보운 스님이 창건해 내금강의 장안사 표훈사, 외금강 유점사와 함께 금강산 4대 사찰로 꼽히던 명찰이다. 숱한 고승대덕이 주석하면서 불국정토의 큰 맥을 이어온 절은 1951년 한국전쟁 와중에 소실됐고, 이후 쑥부쟁이 우거진 절터로만 남아 있었다.
신계사는 사찰이기 이전에 중한 민족문화유산이라, 북측도 47년 ‘국보유적 95호’로 지정해 두고 아꼈다고 한다. 이날 행사는 그 민족의 자산을 남과 북이 합심하여 복원한 첫 사례로서의 의미도 지닌다. 해서 법당은 일제강점기에 찍은 사진과 지표문헌조사를 토대로 28평 건평에 외9포 팔작지붕의 원형대로 복원했다.
1,500년 세월동안 절집을 지탱하고 그 터를 지켜온 주춧돌과 기단이 그대로 쓰였고, 강원 홍천 양양의 육송이 목자재로 쓰였다. 110일에 걸친 불사를 책임졌던 도편수 최현규(48)씨는 “대웅보전 처마 외관의 장엄미를 살리는 데 혼을 쏟았다”고 말했고,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화엄사 없는 지리산을 생각할 수 없듯이, 신계사 없는 금강산 구룡대의 아름다움은 미흡했다”며 “비로소 금강산이 민족의 산으로, 전통의 아름다움을 품에 안은 산으로 거듭났다”고 감격해 했다.
행사는 삼귀의, 반야심경 낭송 등 여법(如法)하게 진행됐다. 고승들이 연꽃을 받쳐들고 어칸(대웅전 중앙문)을 들어서던 순간, 혜해 스님의 눈시울이 붉어진다. 법랍50년(세수 84세)의 노여승은 24살 꽃다운 나이(1944년)에 신계사의 산내암자인 법기암에서 출가했다. 출가한 절은 세속의 고향집과 같은 것. 신계사 부처님을 뵙기 전에는 입적하지 않겠다며 날로 쇠하는 기력을 추스르던 스님은 “이 감개를 어찌 말로 풀어내노”하며 고즈넉이 법당을 우러렀다.
법당 부처님은 조계종 중앙종회에 모셔져 있던 석가모니불을 임시로 봉안했다. 내년에야 새롭게 조성된 청동 석가모니불이 좌우 문수, 보현 협시보살과 함께 모셔진다. 대웅보전 역시 뼈대와 들보, 천개는 소나무의 붉은 맨살 그대로다. 송진이 빠지는 내년 이맘때쯤 연화 당초 봉황문양의 단청을 입힐 참이다. 복원추진위 관계자는 “극락전과 나한전, 만세루, 요사채 등 10여동의 전각을 추가로 지어 2007년 말까지 3,500평 규모의 도량을 갖춰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아무렴 어떤가. 염주알 맺히듯 금강의 품 두루 전통의 절집을 복원해나갈 계획이라지 않는가. 복원된 신계사의 첫 주지로 임명된 제정스님은 “한반도 최초의 통일중심도량에서 불사를 맡게 돼 영광”이라며 “부처님의 광영이 누리에 미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행사에는 차금철 조선불났동Ц?책임부원과 최일남 문화재보전지도국 자재설비처장 등 북측 인사들도 참석해 우리측 종교계, 정관계 인사들과 담소하며 자리를 지켰다.
조계종 종정 법전스님은 종산스님이 대독한 법어에서 “어두운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지만, 눈 밝은 사람에게는 상하조차 없다”고 말했다. 남과 북도, 위도 아래도 없이 모두가 생명으로 존귀하고 평등한 연화의 세계. 거기 볕 드는 좋은 자리에 앉아계신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석가모니 부처님은 온화한 미소로 갈(喝)한다. “물렀거라, 무상한 이념이야! 삿된 욕망이여!” 이제 금강에 가면 그 부처님을, 남과 북이 한마음으로 재현한 민족의 결정을 만날 수 있다.
금강산=최윤필 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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