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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샤갈전의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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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수 칼럼] 샤갈전의 어린이들

입력
2004.11.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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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그림, 처음 그린 그림은 무엇이었을까. 우리의 의식 속에 또 무의식 속에 어린 시절의 많은 그림들이 남아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한다.크레용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면서 꽃 집 햇님 등을 그려놓고 기뻐하던 기억이 누구에게나 있다. 나에게는 튤립을 그리던 기억이 있다.

그림 책에 있는 빨간 꽃과 노란 꽃, 초록색 잎과 줄기를 그리면서 본 적이 없는 그 서양 꽃을 신기해 하던 생각이 난다. 진짜 튤립을 본 것은 10대 쯤이었는데, 상상했던 것보다 볼품이 없어 실망했다. 그러나 몇 년 전부터는 네덜란드에서 튤립을 수입하고 꽃산업이 발전하면서 꽃대가 길고 풍성한 튤립을 볼 수 있다.

어렸을 때 그 꽃을 그리던 기억 때문에 나는 자주 튤립을 산다. 튤립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꽃이 지기 직전이다. 활짝 핀 꽃잎이 흐드러지면서관능미까지 풍긴다. 내 마음속 화폭에는 단정한 꽃봉오리에서 낙화 직전까지 여러 모습, 여러 빛깔의 튤립이 그려져 있다.

지난 7월부터 10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한국일보 창간 50주년 기념행사로 마르크 샤갈의 전시회가 열리는 동안 나는 그곳에 자주 갔는데, 무엇보다 어린이들을 많이 볼 수 있어서 기뻤다.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샤갈의 아름다운 그림 세계가 어린이들에게 어떻게 입력되고 있을까 궁금했다.

단체로 그림을 보러 온 유치원과 초등학교 어린이들뿐 아니라 유모차에 앉아있는 아기들도 많았다. 엄마 아빠와 함께 그림을 보는 아기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미소를 보냈다. 아기들의 마음에 칠해진 샤갈의 빛깔, 샤갈의동화가 어떤 열매로 자라날지 궁금했다.

같이 그림을 보던 나의 친구들도 “어린이들이 좋은 그림을 볼 수 있어서참 좋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때 한국전쟁이 터져 문화실조는 물론 영양실조까지 겪었던 우리세대에게 샤갈을 보는 아기들의 모습은 감동을 주었다. 오늘 우리가 갖게 된 이 정도의 평화와 풍요가 고맙고, 한편으로는 그아이들의 문화체험이 부러웠다.

샤갈의 그림 속에서 왜 사람들이 하늘 위를 날고 있는지 나는 아기에게 묻고 싶었다. 그리고 무슨 대답을 할지 상상해 봤다. “기분이 좋으니까 날아다니는 거야” “저 사람들은 새가 된 거야”라고 아기들은 대답할까.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엄마들, 배가 부른 임산부들이 그림 앞에 오래 서있는 걸 보면 그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아가 이 아름다운 세계를흠뻑 빨아 들이렴”하는 엄마의 속삭임이 들리는 듯 했다.

마르크 샤갈(1887~1985)은 러시아의 가난한 유태인 가정에서 태어나 20대이후 파리에서 그림을 그리며 성공을 거뒀다.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고향 비테프스크의 풍경, 연인과 꽃, 수탉과 추시계 등은 자전적인 요소들과 연결돼 있다. 자신의 인생과 사랑과 여행의 경험을 들려주는 그의 그림들은 소설을 읽는 것처럼 흥미롭다.

초현실적인 이미지, 꿈과 환상, 아름다운 색채는 샤갈을 한사람의 화가에머물지 않게 한다. 헨리 밀러는 그를 ‘화가의 날개를 가진 시인’이라고말했는데,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쉽게 샤갈의 그림에 접근하여 즐길수 있는 것은 그림과 동화와 시의 세계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나의 태양이 밤에도 빛날 수 있다면 나는 색채에 물들어 잠을 자겠네>

<나의 그림은 곧 나의 추억들이다>

샤갈은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들, 특히 많은 어린이들이 샤갈의 색채에 흠뻑 물들고, 그것이 한평생의 좋은 추억으로 남았으면 한다. 서울에서50만의 관람객이 몰리는 대기록을 세웠던 샤갈전은 지난 13일부터 부산시립미술관으로 장소를 옮겨 계속되고 있다. 부산에서도 어린 관람객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이다.

/본사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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