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가 말을 걸어요(정끝별 글. 사석원 그림. 토토북)▲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정민 지음. 보림)
▲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별이 한가득 총총한 하늘(김애숙 엮음. 강순기 옮김. 숲속나라)
아침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나무 열매는 점점 밤색으로 물들어 가요.
물 열매 뺨은 더욱 살지고
장미는 마을에서 사라졌어요.
단풍나무는 고운 목도리를 두르고
들판은 주홍색 옷을 입었어요.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게
나도 몸을 가꿔야겠어요.
미국 시인 에밀리 디킨슨(1830~1886)의 ‘가을’ 전문입니다. 오는 가을에 가슴 설레며 추색에 물들고 싶어 산으로 고궁으로 부지런히 다녔는데 어느덧 한낮의 햇살도 더 이상 어깨에 따사롭지 않고 인도를 덮은 낙엽이행인들의 발길을 푹신하게 받쳐주는 늦가을입니다.
아이들 어릴 때 자주 자연을 만나러 갔습니다. 시구처럼 계절의 유행에 뒤떨어지지 않고 몸을 가꾸는 감수성을 키워주고 싶어서였지요. 그런데 사내애들이라 그런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관찰하는 눈을 가졌으면 하는 엄마의 희망과는 달리 늘 신나는 장난거리 찾기에 골몰했지요.
안타까운 마음에 솔방울을 손에 쥐어주기도 하고 돌아와서도 도감을 이용해 교육효과를 지속시키려 애써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어릴 때 자연에 대한 원체험을 만들어주는 것이 식물 이름 하나 더 아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곧 그만두었습니다.
노란 은행잎 사이의 한 그루 빨간 단풍나무의 자태가 얼마나 요염한지 느낄 수 있고 대나무 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물결소리 같다는 걸 기억한다면, 앞으로 그 애들이 아무리 삭막한 환경에 놓인다 해도 마음 속의 자연이 그들의 일상을 풍요롭게 해주겠지요.
그리고 시인이 우리가 날마다 보면서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것을 감칠맛 나는 언어로 쓴 시를 함께 낭독하고 암송해보면 어떨까요?
‘밤이 되었다’가 아니라 ‘밤이 땅 위를 기어가고 있었다! 밤은 기면서소리도 내지 않았다’ 라는 묘사를 접하면 달도 없는 그믐밤이 떠오르며 땅거미가 지는 모습을 상상해보겠지요. 그리하여 어둠은 어떻게 내리는지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본 것을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할 겁니다.
시는 나름대로 읽고 느끼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해설의 도움을 받고 싶다면 ‘시가 말을 걸어요’나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 이야기’를 권합니다.
또 영국과 미국 동시를 모은 ‘누가 바람을 보았을까’와 ‘별이 한가득 총총한 하늘’은 한 편 한 편의 시에 그림을 짝 지워 그 분위기와 느낌을쉽게 알도록 도와줍니다.
카메라나 여행안내서와 함께 시집을 가방에 넣고 이 가을의 마지막 여행을 떠나고 싶습니다.
/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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