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이면에서 탐욕스런 자본의 논리를 읽을 수 있다면, 시장개방에서농산물 수출국의 압력 뒤에 도사린 거대 복합기업의 음모를 눈치 채기란 그리 어렵지 않다.한국이 당면한 쌀시장 개방 문제처럼 농산물 무역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줄다리기는 강자인 수출국 농민과 약자인 수입국 농민의 이해가 걸린 싸움이아니다. 정확히 말해 그것은 농산물 생산ㆍ유통을 도맡는 세계적인 기업과저개발국 농민과의 힘겨루기다.
캐나다의 농업기업분석가 브루스터 닌이 쓴 ‘누가 우리의 밥상을 지배하는가’(원제 ‘Invisible Giant’)는 미들 랜드(ADM)와 함께 전 세계 곡물시장의 75%를 점유하는 미국계 곡물기업 카길(Cargill)의 성장과 사업전략을 파헤친 책이다.
우리말 제목대로 미국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밥상’을 지배하기 위해 카길이 어떤 전략을 펴왔으며, 그것이 잘못이라면 어떤 대안을 마련해야 할지를 제시하고 있다.
1865년 W W 카길이 설립한 이 회사는 1997년 기준으로 72개국 1,000여 지점에 7만9,000명이 넘는 직원을 두고 100여 가지 사업을 벌이는 연간 매출500억 달러 안팎의 다국적 기업이다.
하지만 정말 놀랍게도 카길은 주식을 일반공개하지 않는 개인기업이다.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교외에 본사를 둔 카길은 곡물과 오일시드(콩, 면화씨, 해바라기 등 기름을 짤 수 있는 농산물), 과일주스, 열대 일용산물과 섬유, 육류와 달걀, 소금과 석유 그리고 가축사료와 비료, 종자를생산ㆍ유통시킨다.
저자는 카길이 세계적인 회사로 도약한 계기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직후몇 년간 이른바 ‘세계구제’를 위해 만든 ‘농업수출진흥법’(공법 480호) 덕이라고 지적한다. 이미 80년 전부터 곡물사업에 잔뼈가 굵은 카길은 이때부터 정부의 원조를 등에 업고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에서 원주민들의 입맛을 바꾸었다.
‘특히 밀 원조는 유아식과 흡사한 형태로 활용되었고, 처음 입맛을 들인사람들에게 평생 팔아먹을 시장을 만들’었고, ‘남아도는 미국식품을 위한 시장을 창출’했으며, 미국내 곡물기업의 세계진출을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세계화를 향한 카길의 전략은 농부들에게 합당한 가격의 혜택을 주는 것도, 계속 농사를 짓게 하려는 것도, 가족이나 지역사회를 먹여 살리게 하려는 것도 아니다.
세계 어디서든 ‘안정적이고 저렴하게 원료에 접근하려는 것’ 뿐이다. 이과정에서 한 나라의 농업기반이 초국적 기업들의 손에 넘어간다. 그리고 지역 농산물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결국 식량주권은 사라지게 된다.
저자는 카길 같은 기업이 앞으로도 더 많은 나라와 지역의 농업정책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식량 지배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안은 지역민과 소비자들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것뿐이다.
저항의 시작은 ‘잡종 혹은 특허 받은 종자의 사용을 거부하는 것과 산업적 단일경작물을 거부하는 것’이다. 또 전통적인 자연수분의 종자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다양성과 자급자족을 추구하는 것이 ‘생태학적으로 건전하고 사회적으로 공정한’ 지역공동체를 확립할 수 있는 기초라고 주장한다.
저자의 이런 주장에 혹시라도 “종자개량이나 기계화대농, 유전자변형식품 생산이 아니라면 늘어나는 인구를 어떻게 감당하느냐”고 묻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푸드퍼스트(식량과발전정책연구소)가 쓴 ‘굶주리는 세계’(창비 발행)를 권하고 싶다. 농민에게 농산물 주권을 제대로 주기만 해도 그런 고민을 감당할 수 있다는 게 그 책의 답이다.
/김범수기자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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