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고전 작가 중에 단 한 사람의 문호를 꼽는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 없이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ㆍ1737~1805)을 택하겠다. 그는 중국 역대 대가의 반열에 놓아도 당당한 경쟁력을 지닌다. 현대에 내놓아도 전혀기죽을 일이 없다. 그의 사유가 보여주는 힘은 읽는 이를 항상 압도한다.한다 하는 학자들도 그의 글 앞에서는 고개를 절래절래 내젓는다. 하지만일반 독자들이 읽어도 너무 쉽고 재미있다. 따져 읽자면 한정 없이 어렵고, 가볍게 읽자면 너무나 경쾌하다.
대한민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 치고, ‘양반전’과 ‘허생전’을 모르는 이가 없다. ‘열하일기’를 모른다는 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란말과 같다. 하지만 정작 이 책을 제대로 읽었다는 사람은 만나기가 어렵다.
이번에 보리출판사에서 박지원의 시문과 ‘열하일기’를 한꺼번에 4책으로 펴냈다. ‘열하일기’는 상ㆍ중ㆍ하 3책으로 면수만 무려 1,938면이다. 박지원의 시문을 따로 엮은 것은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란 제목으로 546면의 분량이다.
‘열하일기’는 1959년 북한 문예출판사에서 리상호의 번역으로 나온 것을새롭게 펴냈고,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는 홍명희의 아들로 북한에서 부수상까지 지낸 홍기문의 번역이다. 처음 책을 받아 들고 그야말로 어안이벙벙했다. 축복이 벼락처럼 쏟아진 느낌이랄까.
박지원의 문집은 합쳐 봐야 분량이 얼마 되지 않는다. 이번에 나온 책으로 2책 분량만 더 나오면 완역이다. 그런데도 그의 문집은 지금까지 완역되지 않았다.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할 수 없어서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그만큼 행간이 깊고 문맥을 잡기가 어렵다.
‘열하일기’만은 진작부터 부분 번역되어 읽혔고, 1966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완역한 국역본도 있다. 하지만 빛깔 바랜 누런 갱지에 인쇄된 낡은판본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딱딱한 한자말투는 읽기를 방해한다. 그의산문 선집도 간혹 출판되었지만,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를 능가하는 분량은 지금껏 나온 적이 없다.
우아하게 편집된 새 책을 보고, “먹다 남은 장도 그릇을 바꾸어 담으면새로운 입맛이 난다”고 한 연암의 말뜻을 실감했다. 예전 북한에서 간행된 것은 나도 진작에 복제본을 지녔던 터, 새 책을 펼치니 이 책이 과연 같은 책인가 싶다. 이번 ‘열하일기’ 3책과 ‘나는 껄걸 선생이라오’의간행으로 대중과 공유하는 연암학은 첫 물꼬를 튼 셈이다.
북한의 번역은 우선 읽기에 쉽다. 우리의 옛 글맛이 그대로 살아있다. ‘훨씬 틀스러워 보였다’ ‘한꺼번에 맞춰 불러 모둠힘을 쓰는 바람에’ ‘살림이 제일 푼더분해 보였다’ ‘날이 희읍스름할 때’ ‘창자가 맞통하다시피 되었다’ ‘입에 침이 없이 탄복을 했다’ 잠깐만 들춰봐도, 도처에서 귀에 익되 이제는 낯설어진 우리식 표현들과 만난다. 정경도 눈앞에그린 듯이 생생하다. 글자에 얽매이지 않고 핵심을 찔러 우리말의 결로 옮겼다.
각주를 주렁주렁 달아야 겨우 이해될 대목도 그냥 간결하게 압축해서 전달의 효용성에 치중했다. 그러다 보니 학술적으로는 다소 문제될 부분도 없지 않다. 하지만 연암의 본뜻을 헤아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다.
‘열하일기’를 찬찬히 읽다 보면, 마치 영화필름이 눈앞에서 돌아가는 것만 같다. 18세기 후반 청나라 변경과 북경의 풍경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책 속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지적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미묘한담론을 만들어낸다.
섬세한 묘사와 절묘한 비유에 얹혀 전해지는 지성의 힘에 독자들은 자꾸 위축된다. 문장의 묘미는 또 어떤가? 치고 빠지는 특유의 너스레와 층층이포개진 행간을 헤아리는 일은 무척 즐겁고 매우 괴롭다.
몇 해 전 나는 연암의 길을 따라 베이징(北京)에서 열하를 찾았었다. 고북구 장성을 지날 때, 연암이 글씨를 썼다던 장성 벽에다 연암을 흉내 내서, ‘연암 후 220년 한국의 아무개 이곳을 지나다’라고 먹글씨를 남겼다. 위대한 문장의 현장에 선 느낌이 자못 장엄했다.
그의 자취가 담긴 곳곳을 지나면서 한 위대한 정신이 과거를 어떻게 현재화하는지 절감했다. 연암은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살아있고 힘 있다. 나는 그 앞에서 늘 맥을 출 수가 없다.
열하에서 코끼리를 본 소감을 쓴 ‘코끼리 이야기’를 읽을 때는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낙타 이야기가 겹쳐졌다. 에코에게 200년 전 연암의 이 글을 읽히면 그가 얼마나 놀라 자빠질까? 계속 이 생각만 했다. ‘요술 구경’을 읽고는 그 꼼꼼한 묘사력과 절묘한 비유에 압도되었다. ‘하루 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는 인식론의 깊은 본질을 꿰뚫었다.
그의 사유는 현대적이고 기호학적이다. 그가 보고 느낀 사물의 세계, 인간의 질서는 지금도 하나 변한 것이 없다. 그의 글이 갖는 파괴력은 바로여기서 나온다. 그는 얽매임 없이 툭 터진 지성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연암과 만나서 크게 변했다. 생각도 달라졌고, 글쓰기도변했다. 그의 글을 꼼꼼히 읽어본 독자라면 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줄을 잘 알 것이다.
들으니, 북한에서 국가적 사업으로 간행된 고전문학선집 100책이 앞으로도 ‘겨레고전문학선집’이란 이름으로 속속 간행되리라고 한다. 고전에는남북이 없다. 이념도 없다. 고전을 통해 남북이 만나고, 시대를 넘어 옛 정신과 만나, 우리의 내면 또한 나날이 풍요로워질 것을 믿는다.
/정민 한양대 교수ㆍ한문학
■ 연암 박지원
“그의 삶과 글을 관통하는 건 경쾌한 유머와 패러독스다. 말하자면 그는권력과 직접 맞서기보다 그 외부에서 새로운 경계를 열어 젖힌 유쾌한 노마드(유목민)였던 것이다.”(국문학자 고미숙)
연암 박지원은 나주 반남 박씨로 좋은 가문이었으나 벼슬에 큰 뜻이 없었다. 사람 사귀고 학문 닦기를 좋아했는데 1777년 사도세자 폐위 문제를 두고 당파싸움에 휘말려 신변의 위협을 느끼자 황해도 연암골로 들어가 살았다. 연암이라는 호도 이때 나온 것이다.
홍대용과 깊이 사귀었고 박제가, 이덕무, 유득공, 이서구에게는 스승이면서 또 벗이었다.
50세가 넘어 정조의 부름을 받고 선공감역, 안의현감 등의 벼슬을 했다.‘양반전’ ‘호질전’을 비롯한 단편소설 10여 편, 시 40여 수, 농업과 토지개혁사상을 담은 ‘과농소초’, 여러 문학론과 사회개혁사상, 편지글을 ‘열하일기’와 ‘연암집’에 남겼다.
고문과 소품체, 소설 등 다양한 문제를 종횡한 연암에 대해 고미숙씨는 “연암의 특징은 무엇보다 유연한 횡단성에 있다”며 “대상과 소재에 따라자유롭게 변할 수 있는 능동성이야말로 ‘표현기계’로서 연암의 우뚝한 경지”라고 평가했다.
■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
'나는 껄껄 선생이라오'는 박지원의 시 13편과 단편소설 전편(10편), 문집 서문과 상소, 논문, 편지글 69편 등 92편을 묶은 책이다. 벽초 홍명희의 아들이자 저명한 월북 국어학자인 홍기문(1903~1992)의 번역본으로 전공자들도 어렵사리 찾아 읽던 ‘총석정 해돋이’ 등 시편들은 연암의 문장가로서의 성취를 확인하게 해준다.
‘좌소산인에게’라는 시편에서 연암은 한(漢)ㆍ당(唐)의 시ㆍ산문을 추종하는 글쓰기를 비판하며 ‘흉내내는 그쯤을 시새워 뭘 하나/ 제 혼자 보긴들 부끄럼 없을까/ 걸음을 배운다고 기는 꼴 우습고/ 미인을 흉내내니 상판이 더 밉다’고 꼬집더니 ‘눈앞에 뵈는 일 진실이 있는데도/ 어째 꼭먼 옛날을 본떠야 하는가/ 한나라 당나라가 지금이 아니고/ 우리 나라 가요가 중국과는 다르다’고 한다. 그의 창작론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메시지는 벗과 제자들의 문집에 써 준 서문 ‘사흘 읽어도 지루하지 않은북학의’나 열 여섯 살 제자의 문집 서문 ‘옛 사람을 모방해서야’ 등에서도 거듭 힘주어 적고 있다.
‘열하일기’에 청나라 연호가 씌었다는 점을 들어 당대의 문사들이 시비를 걸자, 그는 한 서신에서 그들의 허위의식을 통렬히 비판한다.
논밭과 집 거래 문서에 당시의 연호를 쓰는 것을 예로 들며 ‘오랑캐 칭호가 붙은 집이라고 해서 그 집에서 살지 않으며, 오랑캐 칭호가 붙은 농토라고 해서 그 소출을 먹지 않는단 말입니까?’ ‘되놈의 임금, 오랑캐 황제라고 떠들어야만 비로소 춘추의 의리에 철저하다는 말입니까?’라고 반문한다.
그는 ‘열하일기’를 두고 ‘세심한 관찰 아래 놓칠 것이 어디 있을까 하였지만… 아홉 마리 소에게서 한 낱의 털끝을 뽑아 온 폭(九牛一毛)밖에 안 된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책에는 적서차별 철폐를 주장하는 상소, 그의 실학적 화폐론을 담은 논문, 반천의 신분을 초월한 교유의 폭을 내비치는 산문 등이 알차게 실려 있어 ‘근대의 정신으로 산 조선의 문인 학자’로서의 연암을 알게 한다.
최윤필기자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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