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무부는 17일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의 로스앤젤레스 북한 핵 발언과관련, “한국의 고위 관리들과 가까운 장래에 토론을 갖길 바라는 요소들이 있다”고 밝혔다. 13일 노 대통령의 연설이 있는 지 4일 만에 ‘대 언론 지침(Press Guidance)’ 형식으로 나온 미국의 공식 반응 중에서 미 정부 내 분위기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유일한 대목이다.‘프레스 가이던스’는 미 정부가 특정한 외교 사안에 대해 내외신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거나 언론 브리핑 때 사용하기 위해 미리 준비한 대 언론용 발표문이다. 중대 사안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공표하는‘성명(statement)’보다는 격이 떨어지지만 통상 미 정부의 공식 입장을 담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한미 관계 현안의 경우 대개 양국의 원칙적 입장을 확인하는 수준에서 발표되곤 했다.
이번 발표문도 거의 대부분의 내용이 북한 핵 문제를 다루는 양국의 공통점을 확인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이 말한 내용을 주목한다’는 형식으로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양국의 기본 입장에 이견이 없음을 부각했다.
“북한이 핵 무기를 계속 추구하면 결국 고립이 계속될 것”을 지적한 내용 등 국무부가 인용한 노대통령의 발언은 양국이 그 동안의 협의 과정에서 일관되게 유지해온 공통 분모들이다.
게다가 발표문은 노 대통령의 발언 중 한미 관계에 미묘한 파장을 줄 수있는 내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북한의 핵, 미사일 보유 주장이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는 노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 핵 무기의 전세계적 확산과 주변국에 대한 위협을 강조해온 미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측면이있다.
이 점에서 미국의 입장 발표는 불쾌감의 표현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갈등소지를 차단하는 데 목적이 있다는 게 주미 대사관측의 설명이다. 외교 소식통은 “국무부 관계자들이 언론의 스핀(spinㆍ비틀기)을 막기 위해 발표문을 내놓았는데 역효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 같은 반응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일 수 있다. 북한의 핵 보유 주장을 두둔하는 듯한 노 대통령의 발언이 미국 관리들에게 달가울 리가 없다. 국무부는 적어도 한국측에 발언의 진의를 따지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20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양국간에 이견이 표면화할 소지를 없애지만 향후 2기 정부의 대북정책 수립 및 집행 과정에서 분명히 짚고 넘어갈 대목이 있음을 암시한 대목이다.
미국 정부가 교체기인 데다 양국간에 불협화음보다는 공동 보조가 강조되고 있는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사안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불거질 가능성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양국 정상은 이번 회담에서 관례상 공동발표문은 내지 않지만, 북한 핵 문제에 대한 양국의 기존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며 어떤 식으로든 양국관계에 이상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데 주안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김승일특파원 ksi8101@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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