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팜므 파탈’이 2년 전 칸영화제에 처음 공개됐을 때, 일부에선 그 영화의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가 정신을 못 차렸으며 아마 영원히 못 차릴 것이라고 험담했다.그 험담의 근거는 예나 지금이나 간단하다. 드 팔마는 알프레드 히치콕의영화를 줄곧 모방하고 베끼고 있으며, 노인이 된 지금도 하는 짓이 똑같다는 것이다.
그 험담은 상당 부분 부당하다. 마틴 스콜세지와 스티븐 스필버그 등과 동세대 감독인 그는 미국 현대영화 감독들 가운데 가장 과소평가됐고, 그건독창성이란 잣대를 예술가의 절대적 자질로 봐야 한다는 이 시대의 강박감때문이기도 하다.
실은 그는 남의 것을 베끼는 사람이 아니라, 남의 것에서 받은 영향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자기 것으로 만드는 사람이다. 섣부른 관념으로 잘난 체하는 삼류예술가보다 여섯 배는 잘난 감독이다.
‘팜므 파탈’이 좋은 예다. 필름 느와르 영화에 등장하는 요부상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이 영화는 데자뷔(旣視感)와 꿈 모티프를 갖고 관객의 심리를 자유자재로 조종한다.
이야기의 기승전결에 집착하는 이들에겐 마지막 반전이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때까지 화면으로 담아낸 시각적 스토리텔링의 수준이야말로 이 영화가 아무리 일장춘몽 같은 것이라 할지라도충분히 본전 생각은 들지 않게 만든다. 영화는 시초부터 일장춘몽 같은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영화가 그걸 드러낼 때 화를 낸다.
드 팔마는 그런 반응까지 염두에 두고 관객이 100여분 동안 즐길 수 있는최대한의 매혹적인 악몽과 길몽을 두루 전시한다. 그 미로 같은 화면에 사로잡히면 드 팔마가 이 시대에 드문 카메라 만년필을 든 감독임을 실감하게 된다.
이와이 순지의 ‘하나와 앨리스’를 보며 다시 한번 이 사람이 사춘기 소녀의 순정을 담아내는 데는 당할 데가 없는 감독이라는 걸 느끼게 된다. 에게, 겨우 그 이야기야, 라고 우습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도 ‘하나와 앨리스’는 단박에 우리를 사춘기시절의 유치하지만 담백한 순정과 추억으로 끌려들어가게 만드는 흡입력이 있다.
디지털 카메라로 들고 찍은 경쾌하고 섬세한 영상과 거기 어울리는 고아한클래식 선율의 조화 덕분에 이 영화는 아름답지만 서툴러서 아픔을 겪고야마는 그 시절의 깨끗한 표정을 어렵지 않게 스크린에 건져 올린다.
이와이 순지는 그런 면에서 현대적인 감독이다. 활자화한 지성보다는 이미지로 서술했을 때 구체적인 감성을 끌어내는 비상한 재주가 있는 감독이다.
‘나비효과’는 데자뷔를 소재(요즘 데자뷔가 대중영화의 신종 유행상품이된 모양)로 양자택일의 선택이 인생에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를 나름대로실험하는 강력한 시각효과에 비해 이야기는 산만하다.
‘여선생 VS 여제자’는 ‘선생 김봉두’에 이은 장규성 감독의 또 한 편의 학원물이며 ‘선생 김봉두’를 흥미롭게 본 관객이라면, 아마 좋아할 수 있는 영화이다. 적당한 웃음과 감동이 계산된 대중영화, 그렇지만 알면서도 속아주는 구석이 있는 그런 영화라고 보면 될 것이다.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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