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외할머니께서 뒷방에 있는 항아리 속을 들여다보며 제일 맛있게 홍시가 된 것을 골라 건네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할머니의 홍시는 겨울이 다 지나도록 떨어질 줄 몰랐는데… 마당 가득 하얀 눈이 소복소복 내리는 것을 바라보며 할머니와 도란도란 먹던 홍시 맛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아름답던 가을의 정취도 항아리에 담긴 홍시처럼 우리 마음에 담겨져 이따금 꺼내볼 수밖에 없는 시간으로 남는다.
가을의 풍요로움 끝에 찾아오는 겨울의 길목에선 저마다 혼자가 되어 본다. 홀로 있어 아름다운 계절이 바로 지금 아닌가 싶다. 깊은 밤 달빛에 잠을 깨어 뜰 앞을 서성여 보기도 하고, 여명이 밝아오기 전 짙은 어둠 속에 청아한 빛으로 반짝이는 새벽별의 고운 모습도 홀로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 요즘이다.
또한 만물이 그 모습을 비워내고 우주대자연의 품안으로 돌아가는 계절이어서 고요하다. 자연의 이치가 그러하듯 달도 가득 차면 반드시 가진 것을 유감없이 비워낸다.
산허리에 기대어 기우는 달을 보면 꼭 세상을 기대어 쉬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보름달이 되기 전의 달은 대체로 하늘 높이 떠서 세상을 밝게 비춰준다. 그러나 달이 기울 때는 왠지 세상 가까이로 내려와 몸을 기대어 자신을 비워내는 것이다.
출가수행자가 근본은 자신을 채우고 비우는 구도의 과정을 겪으며 세상사람들과 더불어 서로 기대고 의지하며 깨달음을 이루어 가듯, 국민의 일꾼이 되겠다고 나온 이들 역시 존재의 근본을 돌아보며 아낌없이 자신을 비우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스스로의 존재가치를 유감없이 발현할 수 있는 것이다.
덜어내고 비우며 충만한 기쁨을 찾아가는 은혜로움이 함께 하기를 기도해본다.
임성윤 원불교 안강교당 교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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