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독자에세이/ 은행잎 질 무렵엔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독자에세이/ 은행잎 질 무렵엔

입력
2004.11.19 00:00
0 0

우리 동네 가로수는 모두 은행나무다. 한줌 바람에 노란 꽃가루처럼 날리는 낙엽 사이를 지나노라면 지천명의 나이에 접어든 내 가슴 한구석도 아련한 추억에 젖어 든다. 낙엽 깔린 덕수궁 돌담길, 남산 순환로….옆 빌라촌 경비아저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낙엽을 쓴다. 떨어진 낙엽을 그대로 놓아두면 좋으련만. 낙엽 밟는 재미도 있으려니와 혹시 또 모를 일이다. 이 길에서 내 지난 날처럼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추억거리가 만들어질지도.

수확이 풍성해야 할 만추(晩秋)지만 우리네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얼마전 지방에서 자영업을 하는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서울 경기는 좀 어떠냐고. 뻔한 대답을 알면서도 제 자신이 답답해서 묻는 것이리라. 서로 영양가 없는 위로를 주고받다 전화를 끊었다. 가깝게 있다면 이 가을 포장마차에서 소주라도 한잔 나누면 좋으련만.

언제부터인가 은행나무 잎이 다 질 무렵이면 우리 부부는 청평호 물안개를 보러 간다. 십여 년은 족히 넘은 연례행사다. 캄캄한 밤에 차를 출발해동 터올 때쯤 도착해 바라보는 여명의 청평호…. 끝도 없이 피어나는 물안개의 장관. 우리는 그 곳에서 보온병에 싸간 뜨거운 커피 한잔씩을 마시며지나온 일년을 되돌아 보곤 했다.

그런데 아내가 “기름값도 올랐으니 올해 만큼은 생략하자”고 했다. 어려운 살림을 감안하자면 할 말이 없긴 하지만 우리에겐 기름값 이상의 소득이 있는 나들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쓸쓸해진다.

그래, 조금만 더 견뎌봐야지. 그러면 좋아질 때가 있겠지. 노란 은행잎에작은 희망을 실어 이 가을을 보낼 수 밖에.

/박송종ㆍ서울시 광진구 중곡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