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아직도 우리에게 공포와 증오의 대상인가. 수구보수로 비난 받는 정파는 여전히 북한을 적으로만 규정하려 하고, 좌익으로 비난 받는 정파 역시 북한에 관한 쟁점에 대해서만은 조심스럽기 그지없다.일부 언론이 제기한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주체사상’ 교육의혹도 같은 선상에서만 논의된다. 강의의 실제 내용이야 어떻든, ‘주체사상’을 강의했다고 주장하는 순간 이미 논쟁은 ‘빨갱이론’으로 넘어간다. 우리나라 공무원들이 강의 하나 듣고 모두 빨갱이가 되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12일 정보통신부는 ‘친북 사이트’로 규정한 인터넷 사이트 31곳에 대한국내 접속을 차단했다고 밝혔다. 북한에서 만들어진 방송과 인쇄물에 대해서 개인적 열람을 허용하는 현실에서 ‘이적성’을 이유로 사이트 접속을 강제로 차단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친북’ 여부를 판단하는 정부의 능력은 과신하면서 시민들의 정보여과능력은 무시하는 발상이다. 차라리 이들 사이트를 정밀 분석해서 대응전략을 마련하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지금의 60대 이상은 전쟁을 겪은 세대이다. 40대 이상은 어린시절부터 ‘반공방첩’을 거의 국시(國是)이다시피 외우면서 자랐다. 지금 젊은세대는 다르다. 달라야 한다.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기도 하고 수많은 탈북자들이 이 땅에서 살고 있는것이 현실이다. 각종 국제체육대회에서는 단일팀을 만들거나, 공동입장을 하면서 체제간 우애를 과시하기도 한다. 젊은 세대에게까지 레드 콤플렉스를 물려줄 하등의 이유가 없다. 그런데도 신문과 방송속의 북한은 여전히멀거나 무섭거나 미움의 대상이다.
그런 의미에서 15년째 방송되는 KBS의 ‘남북의 창’과 MBC의 ‘통일전망대’는 삭막한 도시속 한 뼘 공원과도 같다. 북한의 방송을 여과없이 보여주기도 하고, 북한 관련소식들과 간단한 분석을 전해주기도 하는 이 프로그램들은 좌니 우니 하며 싸워대는 우리나라 정치판보다 훨씬 더 생산적이다.
지난 10일 ‘통일전망대’에서는 “낙엽을 절대 태우지 말고 썩도록 내버려 두라”는 북한방송 일부를 방영했다. 불과 며칠 후 우리나라 뉴스에서도 같은 내용이 방영되는 것을 보면서, 모방인지 우연이지 따지기 이전에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동질감이라는 것은 아주 작은 부분에서부터 싹을 틔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두 프로그램은 각각 일요일 이른 아침과 수요일 늦은 밤에 잠깐 방영된다. 그나마 축구중계라도 있으면 한 주쯤 건너뛰기 일쑤이다. 젊은세대 중 이 프로그램을 보며 북한을 하나 둘씩 알아갈 시청자는 거의 없어보인다.
방송사의 강령이나 PD연합회의 제작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남북한 문제를 다루는 핵심적인 원칙 중 하나가 ‘민족 이념적 지향성’이다. 이질성보다는 동질성을, 적대관계보다는 상호존중적 태도를 지향하자는 것이다.
이 원칙은 당연히 실천되어야 한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자면, 보다 많은 시청자들이 ‘남북의 창’이나 ‘통일전망대’ 같은 프로그램들을 보도록 편성 및 제작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제목부터 좀 매력적으로 바꾸면 좋겠다.
젊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북한에 대해 당장 공감하기 어렵다면, 이해라도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연세대 영상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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