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끌어들여 "관세화 유예 연장" 中압박지난 5월 이후 미국, 중국 등 9개 국가와 벌인 21차례의 쌀 협상에서 취한 우리 정부의 공식 입장은 '관세화(수입자유화) 유예가 목표지만, 경제적 실리도 챙긴다'로 요약된다. 상대국들이 무리한 요구를 한다면 최악의 경우 관세화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다.
■ 협상전략과 진행과정
정부는 지난 6개월간 공격적인 협상을 벌여 중국을 제외한 8개 국가와는 목표치에 근접한 잠정 합의를 이뤄냈다고 자평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미국, 호주, 태국 등은 지난달 '10년 유예ㆍ의무수입량(MMA) 8%' 수준에서 관세화 유예에 동의했으며, 중국의 '5년 유예ㆍMMA 8.9%' 주장도 협상 초반보다는 많이 완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은 첫 협상에서 10년간 유예를 받으려면 MMA 물량을 20%까지 올려야 한다고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부인하고 있지만, '연미봉중(聯美封中)' 전략을 펴고 있다. 미국을 우호세력으로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는 전략이다. 이는 미국과 중국의 이해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국제시장에서 미국 쌀은 톤당 수출가격이 350~400달러로 중국 쌀(톤당 300달러)에 비해 크게 비싸다.
따라서 미국은 한국이 관세화로 전환하면 그나마 그동안 MMA로 확보해 놓은 물량 마저 잃어버리게 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요컨대 미국은 한국시장을 유지하기 위해 지금처럼 관세화 유예를 지지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한국과 암묵적으로 공동전선을 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미국은 호주와 태국을 설득해 한국의 입장을 수용하도록 막후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쌀 보다는 다른 품목에 대한 검역완화 등을 노리고 이번 협상에 참여한 국가들(캐나다, 파키스탄 등)이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은 것도 이런 맥락이다.
우리 정부도 이에 보답한 흔적이 보인다. 정부는 관세화가 이뤄졌을 경우 MMA물량의 국가별 배분원칙과 관련, "기존의 수입실적이 고려돼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MMA 물량 20만톤 가운데 5만톤을 값비싼 미국 쌀로 채워준 현재의 구도를 계속 유지하겠다는 뜻이다.
■ 막판 쟁점과 일정
협상시한이 임박함에 따라 그동안 경제적 차원에서 진행됐던 협상에 정치적 변수가 작용해 막판 대변동이 일어날 공산도 없지 않다. 경제적으로만 따지면 8% 이상까지 MMA를 늘려가면서까지 관세화 유예를 고집할 필요가 없지만, 정치적으로 엄청난 폭발력을 지닌 농민 정서를 감안하면 8% 이상을 수입하더라도 관세화는 막아야 한다는 정치적 판단이 개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리가 없으면 관세화로 전환한다'는 정부의 기본 입장이 180도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농림부 윤장배 국제농업국장은 "중국이 유예기간 등을 양보하더라도 소비자 시판 규모, MMA 물량의 국가별 배분기준 등 많은 문제들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쟁점들을 12월 초순까지 타결 짓고, 9개 협상 참여국과 개별 합의서를 작성해 세계무역기구에 발송하는 과정을 거치려면 시간이 빠듯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관세화 전환을 선언할 경우 가장 큰 문제는 국회 설득이다. 관세화로 전환하려면 양곡관리법의 관련 조항을 개정해야 하는데, 비록 여당이 다수당이라고 하지만 의원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예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윤 국장은 "2004년 연말은 한국 농업의 운명을 판가름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협상내용 왜 공개했나
협상 종료시한을 40여일 앞두고 정부가 협상 중간결과를 공개한 것은 농민들의 불신을 해소하고 국민적 공감대를 이끌어내 대외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협상 매듭이 지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내용을 공개한 것은 자칫 남은 협상에 악영향을 줄 우려도 있다는 지적이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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