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천신만고 끝에 몰디브를 꺾고 월드컵 최종 예선 티켓을 거머쥐었다.한국(FIFA 랭킹 24위)은 17일 서울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2006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 2차전 몰디브(랭킹 136위)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김두현(수원)과 이동국(광주)의 릴레이골로 2-0으로 승리했다. 이로써 한국은 4승2무로 레바논을 제치고 조 1위를 기록, 내년 2월9일부터 시작되는 대회 최종 예선에 나가게 됐다.
시종 상대편 그라운드 반쪽만을 쓰는 일방적인 경기였지만, 코엘류 전 감독의 퇴진을 몰고온 ‘몰디브 망령’(3월 0_0 무승부)을 확실히 떨쳐내지 못한 한판이었다.
스탠드를 가득 메운 6만2,000여 관중은 한국축구의 만성적인 골결정력 부족에 발을 굴렀으나 후반 들어 잇달아 골문이 열리면서 환호하기 시작했다.
이동국을 최전방 중앙에, 이천수(누만시아)와 안정환(요코하마)을 좌우에 선발로 내세운 한국은 전반 7분 유상철의 헤딩슛을 시작으로 이동국 유상철 등이 골문을 두드렸으나 상대의 밀집수비를 좀처럼 뚫지 못했다.
박지성(아인트호벤)은 전반 22분 상대수비가 헤딩으로 걷어낸 볼을 페널티지역에서 논스톱 오른발 슛을 날렸으나 볼은 골키퍼에 안겼고, 이천수의 프리킥도 골대를 비켜갔다.
전반 26분 안정환 대신 조재진(시미즈)을 투입, 분위기를 전환한 한국은 이동국 이천수 조재진 등이 나서 파상적인 슈팅을 퍼부었지만 골 축포를 터뜨리기에는 매번 ‘1인치’가 부족했다.
후반 들어서도 답답한 상황은 계속됐다. 좌우 크로스와 세밀한 문전 2_1 패스는 부정확해 골문 앞에서 육탄 방어와 밀집 수비를 펴는 상대의 방어벽에 번번이 막혔다.
벼랑 끝에 몰린 한국축구를 구해낸 것은 ‘젊은 피’ 김두현(수원)이었다. 김두현은 후반 21분 상대 아크 부근 왼쪽에서 이동국이 살짝 찔러준 패스를 강력한 논스톱 왼발 슛으로 연결시켰고, 볼은 총알처럼 상대 네트에 꽂혔다.
본프레레 감독은 후반 25분 송종국(페예노르트)을 설기현(울버햄턴)으로 교체, 공격력을 배가했다.
이어 34분 설기현이 상대진영 왼쪽에서 문전으로 낮게 크로스한 볼을 이동국이 쓰러지면서 오른발로 방향을 바꿔 두 번째 골을 신고했다.
한국은 몰디브 골키퍼 모하메드가 육탄방어를 거듭하다 한동안 그라운드에 쓰러질 정도로 공세를 폈지만 아쉬운 두 골로 만족해야 했다.
/박진용 기자 hub@hk.co.kr
■김두현, '몰디브의 저주' 날렸다
‘젊은 피’ 김두현(22ㆍ수원삼성)이 한국축구를 수렁에서 구해냈다. 김두현은 이날 ‘몰디브의 저주’에 시달리며 자칫 한국축구가 개점휴업상태로 빠질 뻔한 후반 21분 대포알 같은 왼발슛으로 천금 같은 결승골을 뽑아냈다.
175㎝ 67㎏의 김두현은 ‘제2의 고종수’로 통할 정도로 꾀가 많은 플레이를 펼치며 공수의 완급을 조절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공격수들의 입맛에 맞는 절묘한 크로스와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기습적인 중거리슛은 김두현의 트레이드 마크.
올림픽대표 출신으로 이날 경기가 A매치 11경기째 출장인 김두현은 강철 같은 체력을 바탕으로 아테네올림픽에서 예선 3경기와 8강전에 모두 선발로 출전해 56년만에 올림픽 8강을 이끌었다.
특히 중원에서 공수를 조율하며 팀의 허리를 지켜내 한국축구의 희망으로 기대를 모아왔다. A매치에서 모두 3골을 넣었다.
김두현은 특히 6월 베트남과의 홈 경기에서 후반 쐐기골을 작렬시키는 등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진공청소기’ 김남일(전남)의 공백을 훌륭히 메워주고 있다.
김두현은 이로써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이후 세대교체를 계획하고 있는 본프레레 감독의 신망을 받아 재발탁이 확실시된다.
여동은 기자 deyuh@hk.co.kr
■'몰디브의 야신' 모하메드 골키퍼 선방
*6차례 결정적 위기 모면… '신들린 방어' 화제
전력이 약하면 골키퍼가 고달프기 마련이다. 몰디브의 골키퍼 임란 모하메드(24)가 그랬다.
이날 ‘몰디브의 거인’ 모하메드가 지키는 가로 7.32m, 세로(높이) 2.44m의 골문은 한국의 소나기슛(30개)에도 불구하고 유난히 좁아 보였다.
이동국의 대포알 슛, 유상철 이천수 최진철의 머리와 발에도 좀처럼 열리지 않았던 것. 김두현이 결승골을 잡아내기 전까지만 해도 이날 최고 관심을 모은 선수는 단연 모하메드였다.
179㎝ 68㎏의 체격을 지닌 모하메드의 활약은 전반 39분부터 인저리타임 4분 포함해 10여분 동안이 절정이었다.
무려 6차례의 결정적인 위기를 ‘묘기대행진’ 수준의 놀라운 선방으로 몰디브 문전을 지켜내 한국팀과 한국응원단의 애간장을 태웠다.
빅토리 클럽에서 활약하고 있는 모하메드는 체력과 기술이 뛰어나 몰디브 축구의 장래를 짊어질 기대주로 꼽힌다.
마누엘 곤칼베스 고메스 몰디브 감독은 “이제 24살에 불과한데도 몸을 아끼지 않는 선방을 펼쳐 앞으로 큰 활약이 기대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여동은 기자 deyuh@hk.co.kr
■ 양팀 감독 말
● 본프레레 한국 감독
많은 찬스를 만들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어쨌든 최종예선에 진출한 것에 만족한다. 전반부터 득점을 노렸으나 압박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고 수비 위주로 나온 상대팀 전술에 대한 우리의 플레이도 확실하지 못했다. 다행히 후반에 스피드와 볼 움직임이 빨라져 두 골을 잡아내며 이길 수 있었다.
● 마누엘 곤칼베스 고메스 몰디브 감독
먼저 조 1위를 차지한 한국 팀에 축하 인사를 해주고 싶다. 끝까지 열심히 뛰어준 우리 선수들에게도 감사한다. 한국과 몰디브는 역시 수준 차이가 많이 나는 상대였다.
전반에는 수비 위주의 전략으로 역습을 노리며 경기에 임했지만 한국 수비가 잘 막아내 역습도 통하지 않았다. 오늘 경기는 정당한 결과다. 한국 팀의 행운을 빈다.
■3년 무승 '상암 징크스' 날렸다
*잇단 불운에 "火氣 때문" 소문… 한때 장소변경 심각하게 고려
3년여 동안 한국축구를 끈질기게 괴롭혀온 ‘상암징크스’가 마침내 22세의 젊은 피 김두현(수원)의 오른발에 의해 깨졌다.
본프레레호는 이날 전반 10여차례의 결정적인 찬스를 살리지 못해 한국축구의 요람인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자칫 ‘한국축구의 무덤’으로 전락시킬 뻔 했다. 하지만 후반 터진 김두현의 대포알 슛 한 방이 징크스를 날려 버렸다.
‘상암징크스’는 2001년 11월 서울월드컵경기장 개장 경기로 열린 크로아티아전 2-0 승리 이후 3년간이나 깨지지 않은 기록.
올림픽 아우들은 4승1무로 무패행진을 벌였지만 유독 성인대표팀은 한일월드컵 독일과의 준결승(0-1 패)을 시작으로 브라질(2-3 패) 등 내리 7연패(連敗)를 당했다.
본프레레 감독 취임 이후 열린 7월 트리니나드토바고전(1-1 무승부)에서야 연패고리를 끊을 수 있었다. 오죽했으면 경기장 터의 ‘화기(火氣)’가 너무 세다는 통설을 잠재우기 위해 불을 삼키는 전설의 동물인 해태 그림을 그라운드에 밑에 묻기까지 했다.
축구협회는 한국 축구의 명운이 걸린 이번 몰디브전을 앞두고 경기장을 변경해야 한다는 주변의 우려를 뿌리치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결전장으로 택했고, 결국 징크스를 털고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 진출하는 두 배의 기쁨을 맛봤다.
또 하나 재미있는 대목은 정작 ‘상암징크스’를 깬 주인공은 형들이 아닌 올림픽대표 출신의 아우 김두현이라는 사실. 이제 독일월드컵을 향한 1차 관문을 통과한 한국축구는 월드컵 4강 팀이 다음대회에서는 본선에 오르지 못한다는 ‘월드컵 4강 저주’를 깨는 일만 남았다.
박진용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