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세 소녀에게 깃든 악령에 맞선 신부의 이야기를 그린 1973년작 ‘엑소시스트’(감독 윌리엄 프리드킨)는 당시에는 보기 드문 특수효과와 신의 절대성에 의문을 던진 내용으로 세계를 충격 속으로 몰아넣었다.이후 1977년 존 부어맨 감독이 2편을 연출하고, 1990년 원작자 피터 블래티가 직접 메가폰을 잡아 3편을 만들 정도로 이 영화는 공포물의 바이블로 자리잡았다. 2000년에는 신성모독 논란으로 원작에서 삭제된 십자가 자위장면이 추가된 감독판이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
4편에 해당하는 레니 할린 감독의 ‘엑소시스트 더 비기닝’(Exorcist: The Beginning)은 마치 ‘스타워즈 에피소드’시리즈처럼 ‘엑소시스트’의출발점을 다룬다. 1편의 25년 전 과거로 돌아가 메린 신부가 악령의 실체를 처음 접하고 엑소시스트로 입문하게 된 젊은 시절을 담았다.
2차 대전 중 나치의 만행을 겪으며 신의 존재에 회의를 품은 메린은 성직자의 삶을 포기하고 고고학자로서 살아간다. 카이로에 머물러 있던 그에게 정체불명의 골동품 수집상이 케냐에서 발견된 동로마시대의 교회에 가서 ‘악마의 상징물’을 구해보겠느냐는 제의를 한다.
발굴현장에 도착한 메린은 예수가 거꾸로 매달린 십자가를 발견하고 주변 마을을 짓누르고 있는 사악한 기운을 느낀다. 메린은 꼬리를 문 의문의 사건들 조사하다 사탄의 실체와 마주친다.
‘엑소시스트…’는 제목만으로도 영화 팬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지만 이름과 모티프를 빌린 전작만큼 뼈 속까지 파고드는 공포를 전해주지는 못한다. 갈기갈기 찢겨진 시체와 수많은 구더기로, 보이지 않는 악마의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나 무서움보다는 혐오감이 앞선다.
‘지옥의 묵시록’과 ‘마지막 황제’로 아카데미영화제 촬영상을 2회 수상한 비토리오 스토라로가 빚어낸 화면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
2001년 처음 촬영에 들어갔으나 존 프랑켄하이머 감독이 건강 문제로 도중하차하고, ‘캣 피플’의 폴 슈레이더 감독이 이어 받아 완성시킨 이 영화는 “너무 무섭지 않다”는 제작사 워너 브러더스사의 자체 평가에 따라 창고에 버려지는 비극을 겪었다. 이를 ‘다이하드2’‘클리프 행어’의레니 할린 감독이 90%를 새로 찍어 내놨다. 18세관람가.
/라제기기자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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