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미국 아칸소주의 시골마을, 로저스에 낯선 잡화점 하나가 문을 열었을 때 그 누구도 이 구멍가게가 세계 최대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이 될 것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샘 월튼(1918~1992)이 세운 ‘월마트 디스카운트 시티’가 ‘Every Day Low Price(최저가 정책)’라는 독특한 전략으로 미국은 물론 지구적으로 영토를 확장, 마침내 2002년 GM이나 엑슨모빌, 영국의 BP 등 쟁쟁한 세계적 대기업을 제치고 매출 1위로 오른 것은 하나의 전설로 남아있다. ‘단 1센트의 거품도 허용치 않는다’는 월마트의 철칙은 지금도 공급업체에겐 악명으로, 소비자에겐 복음으로 회자된다.
■ 전 세계 4,700여개의 매장을 통해 연 2,500억달러대의 경이로운 실적을 올리는 월마트의 현재 대주주는 창업자의 부인과 3남4녀로 39%의 지분을 갖고 있다. 최근 미국의 경제주간지 포춘은 월튼 가문의 재산이 모두 900억달러(99조원)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인플레를 감안하면 역대 미국의 최고 부자였던 록펠러 가문 다음이며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466억달러)와 금융회사 버크셔해서웨이 회장인 워렌 버핏(410억달러)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 규모다. 이들 5인은 올 2월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부자 6~10위를 휩쓸기도 했다.
■ 지만 이들은 지난 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영향력있는 세계적 갑부’ 25인에서는 모두 배제됐다. 물려받은 재산을 향유할 뿐 그에 상응한 사회적 역할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FT가 새롭게 제시한 기준은‘혁신적인 창업, 혹은 축적된 재산으로 인류사회에 어떤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변화를 가져왔느냐’는 것.
이 기준에 따라 에이즈ㆍ말라리아 퇴치 등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270억달러를 기부한 빌 게이츠가 리스트의 맨 위에 올랐고, 5개 대륙에 미디어왕국을 건설한 루퍼트 머독. 소로스펀드 회장 조지 소로스, 이탈리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인텔 명예회장 고든 무어,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등이 그 뒤를 이었다.
■ 실 재산이 일정 규모를 넘으면 얼마나 더 많고 적으냐는 의미가 없다.개처럼 벌었던, 정승처럼 벌었던, 자신에게 돈을 모으도록 해준 사회에 어떻게 기여하느냐가 남은 업이 된다. 우리 사회의 갑부들에게 FT의 기준을 적용하면 누가 리스트의 상단에 오를까.
이유식 논설위원ysle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