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순국선열의 날이었다. 이 날의 내력은 일제 강점기인 1939년까지 올라간다. 조선 독립운동의 한 구심점이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그 해 11월 임시의정원 임시총회에서 11월17일을 순국선열 기념일로 지정했다.11월17일을 고른 것은 대한제국 주권의 핵심 부분을 일본제국에 넘긴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이 1905년 11월17일에 체결됐기 때문이다. 그러니까이 날 그 행적을 기리는 순국선열이란 주로 일제에 맞서 국권을 되찾기 위해 헌신한 이들을 가리킨다.
의로운 죽음에는 여러 유형이 있을 수 있겠지만, 순국은 그 가운데서도 두드러지게 고귀한 죽음으로 간주된다. 순국 행위가 기념일을 거느릴 만큼 높이 평가되는 것이 그 죽음의 내재적ㆍ본원적 가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제가 속해 있거나 옹호하는 계급이나 신분이나 지역이나 혈연집단이나 이념을 위해서 몸을 내던지는 공적 죽음이 제가 속해있는 국민을 위해 몸을 내던지는 순국보다 내재적으로 더 작은 가치를 지녔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런 공적 죽음들 가운데서 특히 순국이 가치의 사다리 윗부분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지금의 세계가 국민국가체제에 얹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순국은 우리가 공기처럼 숨쉬고 있는 바로 그 국민국가 내부를 통합하는 상징적 힘인 것이다.
국민국가체제는 물론 인류 모듬살이의 필연적ㆍ자연적 형태는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특정 단계에 대응하는 한시적 얼개일 뿐이다.
그래서 국민국가체제의 공식 이데올로기인 민족주의의 어두운 측면에 주목해 국민국가의 해체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사람들의 뜻은 말할나위 없이 거룩하다. 그리고 국민국가를 해체한 뒤 세속적이고 단일한 지구공동체를 수립하는 것은 인류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할 목표이기도 하다.
그런 한편, 세계시민주의적 수사를 남발한다고 해서 지금의 국민국가체제가 이내 없어지지는 않으리라는 점도 엄연하다. 국민국가체제는 완강한 현실이고, 우리의 중단기적 사고와 전략은 그 완강한 현실에 토대를 둘 수밖에 없다.
인류 대부분이 국민국가체제를 자연스럽게 여기며 그것을 제 공적 삶의 테두리로 삼고 있는 터에 특정 주민집단만 중뿔나게 국민국가 해체를 선언한다면, 그것은 이상을 핑계 삼은 덧없는 자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우선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것은 현실의 국민국가를 좀더 살 만한 공동체로 만들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순국이 상정하는 국민국가는 계급을 비롯한 여러 범주의 주민집단이 얽히고 설켜 사는 잡거(雜居)의 공간이다. 그리고 한 국민국가의 내적 연속성이 손상되지 않으면서도 순국을 주도하는 계급이나 이념은 얼마든지 바뀔수 있다.
예컨대 1870~71년 프로이센-프랑스전쟁 때 전선에서 죽어간 프랑스인들의 주류가 자유주의를 지향했다면, 1940년대 전반기 독일 점령군에 맞서 저항운동을 하다 죽은 프랑스인들의 주류는 공산주의를 지향했다고 할 만하다. 해방된 프랑스에서 공산당은, 비록 힘이 만만치는 않았으나, 주류가 돼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이 비(非)공산 프랑스는 공산주의자들의 순국을 기리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러시아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즘에 맞서 무더기로 산화한 공산주의자들을 역사에서 지우지 못했다.
반면에 우리는 어떤 순국선열이 맘에 들지 않는 이념을 지녔다는 이유로 그들을 공식 역사의 바깥으로 밀쳐내 왔다. 그런 차별과 배제의 관행을 정당화하는 논거는 분단 현실이었다.
그러나 19세기 말 이래 한국사의 일차적 지향점은 통일된 자주적ㆍ민주적국민국가의 수립이었고, 순국선열들은, 좌든 우든, 그 미완의 목표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인들이었다. 독립운동 시기 선열들이 어떤 사상과 이념을 지녔든 그들의 헌신을 있는 그대로 밝혀야 한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8월 발언은 전적으로 옳다.
고종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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