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 김형중 씨와 한국일보 문학상 예심작 선정 작업을 하면서 평소와 다른 보람을 느낀 것은 무엇보다 한국 소설계가 다양한 컬러와 지향을 보여주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것은 예년에 없던 현상이고 아쉽게 본선에 올리지 못한 몇 분 작가들과 더불어 우리 소설의 내일을 밝게 전망하도록 했다. 작품평을 맡은 김연수의 ‘거짓된 마음의 역사’, 정지아의 ‘미스터 존’,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새롭게 보면서 이러한 생각은 떠 또렷해지게 된다.
먼저 김연수의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단편소설이라는 짧은 형식 속에 오리엔탈리즘의 문제를 선명하게 부조해 낸 작품이다. 역사를 해석하고 요리할 줄 아는 작가가 얼마 되지 않는 오늘의 한국소설계에서 ‘거짓된 마음의 역사’는 단연 두각을 드러내는 수작이다.
동양의 은둔국 조선에서 실종되어 버린 여인을 찾아달라는 부탁을 받고 태평양을 건너가는 주인공의 심리적 변화를 서간체로 요령있게 변주해 나간 솜씨도 솜씨지만, 허무주의적인 역사해석에 들떠 있는 시류와는 달리 그것을 개인적 삶이 펼쳐지는 실존적 공간으로 파악하는 안목이 믿음직스럽다.
서양인의 시선에 노출된 동양의 이미지, 그 수정의 문제, 이를 통해 드러나는 세계의 새로운 모습 등은 지극히 현대적인 주제 가운데 하나로서 김연수가 세계관을 추구하는 작가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다음으로 정지아의 ‘미스터 존’에 대해서. 얼마 전에 출간된 정지아 씨의 창작집 ‘행복’을 두고 또 후일담 소설이냐는 식으로 반문하는 사람들이 없지 않지만, 사람은 한번의 인생밖에 살지 못하며 단 한번의 클라이맥스밖에 경험하지 못하는 것이다. 또 작가에게 시류에 맞는 소설을 써달라고 요구하는 것만큼 무례한 일도 없다. 무엇보다 ‘미스터 존’은 현재를 보는 작가의 촉수가 예민하다는 사실을 보여주기에 부족하지 않다.
전향이라는 과거를 가진 여자가 낯선 타국의 고립된 공간에서 또 다른 고독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존이라는 남자를 만나 삶의 의미를 되돌아보는 이 이야기는 이념과 실업이라는 시대적 주제를 무리 없이 갈무리한 수작이라고 할 만하다.
작가가 풀어나가는 한 문장, 한 문장이 모두 아름답고 깊이가 있어 단편소설의 미학성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다. 단편소설의 기품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채식주의자’는 한강의 저력을 유감없이 입증해 준 문제작이라고 생각된다. 한강, 하면 항상 신진작가답지 않게 정통적인 수법으로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선입견이 작용하면서 새로운 것 같지 않다는 인상을 갖게 되지만 ‘채식주의자’ 한편을 통해서 그녀가 한국적인 삶의 양상을 얼마나 근본적인 입장에서 날카롭게 진단하고 있는지 보여준다.
육식을 거부하면서 메말라 가는 여주인공으로 상징되는 우리사회 부패성은 이 작품을 단순한 여성소설로 보지 않게 하는 비범함과 극단성이 있다.
주류적인 여성소설의 불철저함에 시달려온 눈을 다시 뜨게 만드는 시원스러움이 있다. 한강의 소설은 기법과 재능의 차원에서 얻어질 수 없는 깊이가 있다는 점에서 신진작가답지 않은 본격성이 돋보인다고 할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금은 1990년대 중반쯤으로부터 시작된 문학적 흐름의 한 시대를 정리, 검토해 보는 위치에서 새로운 문학을 구상해야 할 시점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두각을 드러낸 작가들을 좀더 객관적인 시각에서 검토해 보면서 우리가 잊고 있던 다른 작가는 없는지 생각해 볼 것을 필요로 한다.
김연수 정지아 한강 3인의 공통점은 세계를 읽어내는 시각과 세련된 스타일로 유행과 거리를 두고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 가는 작가들이라는 점이다.
정지아가 보여주는 절제된 슬픔과 인생에의 성찰, 김연수가 보여주는 역사 텍스트와 사실의 새로운 만남, 한강이 헤쳐 나가는 결백한 세계를 향한 투쟁은 우리 소설이 안정감과 깊이를 회복할 수 있게 될 것임을 예견케 한다.
방민호 문학평론가(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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