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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수능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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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수능시험

입력
2004.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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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이맘 때다. 울산의 한 여자 재수생이 수능시험 다음날 목숨을 끊었다. 가채점에서 예상보다 20점 낮게 나와 낙담해있던 터에 아침에 배달된 신문에 10점 이상 오를 것으로 예측 보도되자 완전히 절망한 것.그런데 불과 반나절 뒤 입시당국 표본채점 결과, 오히려 5~6점 하락한 것으로 바뀌었다. 그 해 모든 신문들은 희대의 오보에 대한 사과문을 일제히 실었다. 그러나 그뿐이었고 그 일은 곧 잊혀졌다.

■ 매년 수능시험 등 성적비관 스트레스로 자살하는 학생이 200명에 이른다고 한다. 지금도 어디선가 어린 생명들이 살인적인 입시경쟁을 원망하며 짧은 생을 마감하고 있다는 것이다.

80년대 중3 여학생이 자살하면서 유서에 남긴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항변은 큰 메아리를 남겼다. “물고기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며 세상을 떠난 초등학교 5학년도 있었다. 성적과 시험으로 인한 자살은 이제 너무도 흔해서 아무도 놀라지 않는다. 신세대의 나약한 심성 때문에 일어나는 그렇고 그런 일상일 뿐이다.

■ 수능시험 날이면 공무원들의 출근시간이 늦춰진다. 지하철과 시내버스가 증편되고 군까지 동원돼 수험생을 실어 나른다. 듣기 평가시간에는 항공기 이착륙이 통제되고 시험장 주변에서 경적 사용이 금지된다. 학부모들은 고사장과 교회, 절, 성당 등에서 하루종일 애간장을 태운다.

포크, 엿, 부적 등은 고전적인 것이고 올해는 황토베개, 자석팬티, 찍기용 연필이 합격기원 상품으로 인기라고 한다. 신문은 상당 지면을 수능시험에 할애하고 방송도 주요 뉴스로 도배질 한다.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이다.

■ 오늘은 60여만 명의 수험생뿐 아니라 온 국민이 홍역을 앓는 날이다. 누구를 원망할 것도 아니다. 뿌리 깊은 학벌주의와 과도한 교육열 탓이다. 우리의 의식과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숙명과도 같은 것이다.

오늘 밤도 시험을 못 본 수험생들은 아파트 옥상을 서성거릴 것이다. 되풀이되는 비극에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현실 앞에서 또 얼마나 많은 자식과 형제, 친구를 잃어야 하는가. 쌀쌀한 날씨에 10시간 가까이 시험 치른 것만도 대견한 우리 아이들에게 점수를 떠나 가장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자.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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