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언론에 보도된 뉴스 가운데 유난히 세인의 눈길을 끈 두 기사가 있다. 하나는 경기불황에도 불구하고 1,000만 원짜리 백화점 상품권이 불티나게 팔렸다는 기사이고 다른 하나는 50대 가장이 병원비가 겁나 집에서 낙상한 상처를 바느질실로 직접 꿰맸다는 것이다. 이 가장은 상처가 덧나 부득이 극빈자 진료소를 찾게 됐다는 이야기이다.세계 경제대국 10위권에 진입하고 선진국 클럽이라고 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지도 10여 년이 돼 가는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진다는 것에 대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를 극명하게 드러낸 위의 사례는 결국 국민소득 재분배를 통한 사회보장 내지 사회복지가 정부의 재원 부족 등으로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 얻은 6ㆍ29 선언 이래 그 동안 권력의 정통성은 정치 민주화를 통해 얻었으나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부(富)의 정통성 문제만큼은 미해결로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즉, 경제민주화의 요체인 ‘조세정의’가 실현될 때 부의 정당성도 인정되고 사회보장을 위한 재원도 마련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세정의란 단순한 논리이다. 많이 버는 사람, 많이 가진 자가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 적게 가진 자가 적게 내는 것을 이른다. 그렇게 함으로써 빈자들의 인간적인 삶을 나라가 보장하여 국가공동체가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의 극심한 대립으로 붕괴되는 것을 막는 완충제 또는 보험료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데 있다. 예컨대, 2002년 건교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 강북에 사는 사람이 강남에 사는 사람보다 재산세를 평균 5.5배 많이 냈다. 평수가 같다는 이유만으로 10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과 2억짜리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같은 세금을 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헌정사상 가장 좌파ㆍ진보적 정부라는 김대중 대통령과 현 노무현 정부에 이르러서도 소득 분포의 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는 매년 악화돼 가기만 하고 있다.
정부가 뒤늦게나마 종합부동산세 도입을 서두르고 빈곤층을 위한 사회안전망 대책으로 근로소득보전세제(EITCㆍ일명 마이너스 소득공제)를 채택하기로 한 것은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운영의 묘를 살리지 못할 경우 본래의 취지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종합부동산세(안)의 경우, ‘종합’이라는 말에 걸맞지 않게 가구별 합산 대신 개인별로 과세한다든지 주택과 나대지, 사업용 토지를 합산과세하지 않고 따로따로 과세토록 함으로써 진짜 부자가 빠져나갈 구멍은 모두 마련된 상태이다.
일례로 9억짜리 아파트 한 채뿐인 사람은 과세대상이고 8억 집에 5억 나대지, 39억 사업용 땅 등 도합 52억 원의 막대한 부동산을 가진 사람은 과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은 명백히 잘못된 것이다. 개인별 과세이다 보니 이론상 부부의 경우 최대 104억 원의 재산을 가지고도 종부세를 한푼도 안 낼 수 있다는 것은 ‘조세정의’ 구현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다.
주택만 가지고 있는 경우라 할지라도 부부가 공동명의로 소유할 경우 기준시가 18억 원이 넘지 않는 집은 아예 종부세 대상이 안 되는 것도 큰 문제이다. 실제로 시가 25억 내외의 집은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식으로 새 세제의 허점을 이용해 빠져나간다면 종부세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
형평과세는 경제민주화, 즉 부의 정통성을 세우는 지름길이며 우리의 취약한 사회보장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최우선 순위를 두어 추진해야 할 역점 과제가 아닐 수 없다.
김경수 명지대 교육학습개발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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