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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美국무 내정자 누구 - 힘의 외교 중시.."부시가의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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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스 美국무 내정자 누구 - 힘의 외교 중시.."부시가의 일원"

입력
2004.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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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0살짜리 흑인 소녀는 백악관 앞에서 부모에게 다짐을 한다. “밖에서 백악관을 구경해야 하는 건 피부색 때문이에요. 두고 보세요, 전 반드시 저 안에 들어갈 거예요.” 40년 뒤 소녀는 그 꿈을 넘어 세계를 상대로 하는 미국 외교의 수장에 올랐다.올해 50세, 미혼의 흑인에 개신교 신자인 콘돌리자 라이스가 15일 신임 미국무장관에 임명됐다. 여성으로선 빌 클린턴 정부 시절 올브라이트에 이어, 흑인으로는 전임 콜린 파월에 이은 두 번째다.

라이사의 꿈을 실현시켜준 것은 부시 일가다. 1990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수석 보좌관으로 백악관에 입성한 라이스는 부시 일가의 일원이나 다름없다.

그는 주말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캠프 데이비드에서 운동을 하고 스포츠 중계방송을 함께 즐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이보 H 달더 선임연구원은“라이스의 임명은 부시 대통령이 가장 편하고, 자신의 외교정책을 가장 잘 숙지한 인물을 주변에 두고 싶어한다는 것을 뜻한다”고 말했다.

실제 외교정책에 관해 부시 대통령은 라이스가 설명해주기 전에는 말하지않을 만큼 두터운 신임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라이스의 애칭‘콘디(Condi)도 부시 대통령이 붙여준 이름이다. 뉴욕타임스는 이런 라이스를 가리켜 “키신저 이후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보좌관이자, 로버트 케네디 이후 가장 가까운 각료”라고 평가했다.

라이스는 지금까지 정부 내에서 자신의 색채를 드러내기보다는 조정 역에충실했다. 미 NSC의 전문가인 데이비드 로스코프는 “체니, 럼스펠드, 파월에 둘러싸인 라이스는 ‘아기’와 같았다”고 평했다.

하지만 그는 2000년 포레인 어페어즈에 기고한 글을 통해 힘의 외교에 관한 자신의 신념을 피력한 적 있다. 기고문에서 그는 “힘은 중요하다”면서 “미국이 다른 나라를 위해 힘을 행사할 때만 정당한 것이라는 주장은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라이스가 한국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비판적이란 평가도 나온다.

미국의 꿈을 이룬 라이스는 KKK단이 출몰하는 미국 남부 앨러버마주 버밍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딸에게 최상의 환경을 만들어주고는 백인보다 두 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며 엄격한 교육을 했다.

훗날 세계적인 첼리스트 요요마와 협연한 적도 있는 라이스의 어린 시절 꿈은 피아니스트. 고교시절에는 피규어 스케이트 선수를 지냈다.

그러나 덴버대학 시절 국제정치학 강의를 듣고는 방향을 ‘러시아’ 전문가로 바꾼다. 당시 강의를 한 사람은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의 부친 조지프 코벨 교수였다. 고르바초프는 냉전에 마침표를 찍은 89년 미소의 몰타정상회담을 떠올리며 당시 앳된 얼굴의 라이스가 “내가 아는 소련의 모든것을 말하고 있었다”는 찬사를 남겼다.

/이태규기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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