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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66>아테네 학생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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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1266>아테네 학생봉기

입력
2004.11.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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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1월17일, 아테네산업대학을 둥지로 삼은 학생과 시민들의 반독재시위 물결은 나흘간의 점고(漸高) 끝에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다. 시위는 군사정권에 의해 강제징집됐다가 유럽 인권단체들의 압력으로 풀려난 학생들이 선도해 즉각 시민들의 호응을 얻었고, 그리스는 7년간의 침묵을 깨고‘군사파쇼 반대’ ‘미국과 나토 반대’ ‘빵과 교육과 자유’를 외치며민주주의를 갈구하고 있었다.군부는 무장병사들과 탱크를 아테네산업대학에 들여보내면서 강경 대응에나섰고, 학생ㆍ시민들의 피흘림 속에서 시위는 잦아들었다. 그러나 이 11월 봉기는 이듬해 그리스 민주주의가 다시 시동을 걸 토양을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피비린내 나는 좌우내전을 겪은 그리스는 미국의 강력한 지원 아래 내전을 종식시키고 입헌군주제 국가로 재출발했지만, 왕당파와 공화파 사이의 갈등과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유럽에서 가장 불안정한 정치 지형을 보이고 있었다.

1967년 총선에서 좌파의 승리가 확실해보이자 군부는 투표 이틀 전 쿠데타를 일으켰고, 그 뒤 7년간 그리스는 스페인ㆍ포르투갈과 함께 유럽에서 보기 드문 우익 독재체제를 겪게 되었다. 대학은 군부의 프락치로 들끓었고, 수사기관의 불법 체포와 고문은 일상적이었다. 1973년 시위는 친미 군부세력의 이 독재체제에 파열을 낸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시위에 정신적 연원을 둔 그리스 사회운동의 한 흐름은 시대착오적 좌편향을 보이기도 했으니, 그것이 ‘11월17일단’이다.

1973년 봉기일에서 이름을 딴 이 좌익테러 단체는 CIA 아테네 지국장 리처드 웰치의 저격을 시작으로 1975년 이후 미국·영국 외교관들과 그리스 자본가·경찰 간부들을 잇따라 암살하면서 그리스 기득권 세력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었다. 2002년 그리스 경찰은 11월17일단의 핵심 간부와 행동대원들을 체포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고종석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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