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북한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목했던 이란이 15일 우라늄 농축과 관련한 모든 행위를 22일부터 중지한다고 발표, 이란 핵 문제가 새 국면을 맞았다.이란의 이번 결정은 유럽연합(EU)을 대표한 영국 프랑스 독일이 평화적 핵 활동과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경제적 지원을 보장하는 등 장기적 핵 활동 억제 프로그램을 제시한 데 대해 화답한 성격이 강해 보인다.
이로써 이란 핵 문제는 이란 당국의 약속 이행 여부 및 미국의 대응 등 변수가 남아있지만, 22일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의 유엔 안보리 회부와 안보리의 경제제재 결정 등 우려했던 파국은 일단 피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이란과 리비아의 핵 개발 문제가 한 고비를 넘김에 따라 국제사회의 이목이 북한 핵 문제에 집중될 가능성이 있다.
이란의 핵 협상대표인 하산 로하니는 이날 테헤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자발적으로 우라늄 농축 활동을 전면 중단한다고 선언하면서도, EU가 평화적 핵 활동과 경제지원 등을 보장했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 합의는 이란의 핵 프로그램이 평화적 목적에 부합한다는 객관적 보증(Objective guarantees)과 경제 및 안보적 협력에 대한 보증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다만, 협상에 의한 핵 활동 중단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이행될 지는 좀더 두고 봐야 한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이란은 우라늄 농축활동도 수년이 아닌 수개월 유효할 것이라고 선을 그은 데다, 핵 사이클의 완수를 추구하는 기존 입장을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이는 미국이 요구한 모든 핵 개발 프로그램의 전면 폐기와도 배치된다.
더욱이 IAEA는 이란이 지난 20년간 개발해온, 이른바 ‘과거 핵’ 문제에 대해서도 강한 의구심을 갖고 있다. 또 이란이 순순히 IAEA의 핵확산금지조약(NPT)의 추가의정서를 비준할지, 강도 높은 IAEA의 핵사찰 과정을 수용할지도 여전히 불투명한 상황이다.
하지만 지난달 31일만 해도 의회가 우라늄 농축 재개를 승인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는 등 강경기조로 일관했던 이란의 이번 결정은, 이란 핵 문제가 바야흐로 협상의 길로 들어섰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전문가들은 지난달 의회에서 우라늄 농축재개법을 승인하는 등 강경한 입장이었던 이란 정부가 협상 쪽으로 급선회한 것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미국은 이란이 국제사회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란 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이란 정부는 안보리에 회부될 경우 유엔의 강도 높은 경제제재와 최악의 경우 미국과 이스라엘로부터 무력공격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안보상의 위협을 우려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안보리 회부에 반대한 러시아 중국 등이 적극적인 중재에 나선 것도 이란의 양보를 이끌어낸 배경이다. 이란과 EU는 다음달 15일께 협상을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
황유석기자 aquarius@hk.co.kr
■이란 핵파문 왜?
이란 핵 파문은 우라늄 농축이 전력생산을 위한 것이라는 이란 정부측 주장에 대해 미국 등 서방이 핵무기를 개발하기 위한 술책이라고 의심하면서 비롯됐다.
미국 등은 이란 정부가 핵무기 개발의혹이 완전히 해소될 때까지 모든 우라늄 농축 활동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란 정부는 전력생산을 위한 우라늄 농축 활동은 국제적으로 권리가 인정된 주권국 고유권한에 속하는 것이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강도높은 사찰수용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발전용 수준의 우라늄 농축은 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IAEA는 그러나 우라늄 농축이 핵무기 개발로도 전용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핵개발이 의심되는 경우 사찰을 강화할 수 있다는 것을 추가의정서에 규정하고 있다. 이란은 NPT에는 가입했으나 추가의정서는 비준하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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