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이영자(73·사진 오른쪽)씨가 시인 김남조(77·왼쪽)씨의 시 ‘목숨’을 읽은 것은 스물 세 살 때. 한국전쟁 직후였다. 전쟁통에 간신히 살아난 그녀에게 ‘목숨’은 바로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 얼굴도 모르는 시인이 꼭 전생에 자신의 배필이었을 것만 같았고, 남자인 줄 알았다. "그때부터 김 시인의 시에 빠져 목숨 걸고 사랑하고 살아왔다" 는 그녀가 김 시인의 시로 만든 13편의 가곡으로 17일 저녁 8시 금호아트홀에서 음악회를 한다.이씨는 국내 작곡1세대이자 여성작곡가들의 대모. 그녀가 김씨의 시로 작곡을 시작한 것은 60세가 넘어서다. "김 시인의 시로 노래를 만드는게 쉽지 않아서 시를 음악으로 잉태하는데 그만큼 오래 걸렸다"면서 "남은 여생 그녀의 시로 50곡쯤 더 쓰고 싶다"고 말한다.
그리 깊고 오래 된 사랑이면 진작에 만났을 법도 한데, 둘은 3년 전에야 처음으로 만났다. 이씨가 자신의 고희음악회에 김 시인을 초청했다. 이번 음악회도 김 시인으로서는 뜻밖의 선물이다. 이씨가 음악회 장소까지 빌려놓고 나중에 알려준 것. 올해 희수를 맞기까지 그동안 자신을 위한 행사를 해본 적이 없다는 김 시인은 "불시에 촉광 높은 전등이 켜지는 것 같은 부끄러움과 어색함을 주체하기 어렵다"면서 고마워한다. "기나긴 50년 동안을 좁혀지지 않는 거리의 양편에 서 있어온 사실이 민망하고 송구스럽다"고도 했다.
두 사람은 요즘은 종종 만나 같이 음악회도 가고 한다. 이를 이씨는 "황혼의 촛불처럼 잔잔한 사랑"이라고, 김 시인은 "노년의 축복"이라고 말한다.
오미환기자 mh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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