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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사상의 시장’은 없다 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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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사상의 시장’은 없다 Ⅱ

입력
2004.1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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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뜸 반말하는 걸 보고 처음에는 고교 동창쯤 되는 줄 알았다. 지난번 ‘사상의 시장은 없다’는 글을 쓴 후였다. 그게 아니었다. 마침 ‘40년 전과 변한 게 없다니 마음 아프고 답답하다’고 공감하는 이메일을 받은 뒤였다. 반대로 이번 것은 욕설이자 협박이었다.'박래부, 네 말대로 대한민국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면 그런 칼럼을 쓸 수 없었을 것이다. 사상, 색깔론 운운하지 말고 빨갱이 생각을 가졌다면 북으로 가라. 김정일이 환영해 줄 것이다. 거기서 그곳의 사상과 자유와 인권에 대한 칼럼을 써라. 김정일 꼬봉×들과 심정적 간첩×들 수 만 명만 북으로 보내면 대한민국은 세계최고의 나라가 될 것이다. 한 가지만 더, 대한민국에는 네가 쓴 기사의 목적을 읽어낼 수 있는 독자가 많다는 것을 명심해라. 그들은 네가 어떤 기사를 썼었는지 반드시 기억할 것이다. 이O>

악의로 내 칼럼을 왜곡했지만, 그 중 한 가지는 맞을 듯하다. 북한 체제가 사상과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지적에는 동의하고 싶다. 분노를 누르고 짧은 답장을 보냈다. '이O씨, 기본적 예의를 갖추고 글을 쓰시오. 당신의 그런 태도가 바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를 이루지 못하게 한 요인일 것이오.>

그는 집요했다. 다시 같은 글을 경어체로만 바꾸어 ‘본질에 대한 언급’을 요구했다. 또 쓸 수밖에 없었다. '이O씨의 정치적 견해는 존중하나, 자신을 제대로 밝히지도 않은 채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고 해서, 아무나 조롱과 협박의 대상으로 삼지는 마시오.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의 본질일 것이오. 최근 이부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말을 답 대신 들려 주고 싶소. "우리 안에 좌파가 있다면 고발하라. 고문 당해 주겠다." 한심한 말이지만, 이O씨가 기대하는 말일 것 같기 때문이오…>

이광호 ‘진보정치’ 편집위원장은 최근 이 의장의 ‘고발’ 발언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좌파는 고발 대상이 아니며, 어느 누구도 고발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자명한 원칙을 들어 ‘수준 이하의 발언’을 나무라고 있다. 그는 열린우리당은 스스로 고백하듯이 중도우파 정당이며, 한나라당은 극우적 색채를 포함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도 "진짜 좌파 정당은 민노당"이라고 명쾌하게 밝히기도 했다.

수상한 좌파논란이 수그러질 줄 모른다. 정부여당은 자기가 좌파가 아니라고 극구 부인하는 데도, 야당은 한사코 좌파라고 우긴다. ‘좌파’를 놓고 ‘가해자 대 피해자’의 관계가 당연히 성립하는 듯하다. 집권당 의장의 생각부터 이런 한심하고 위험한 수준에 고착돼 있다. 누군가의 표현처럼 아직도 ‘붉은 페인트공 전성시대’다.

이 의장은 또 과거사법, 언론개혁법, 사학개혁법 등에 대한 속도조절론을 펴 타협하려 들고 있다. 이 개혁법안들은 반역사, 반민주적 악법과 관행을 광정하기 위한 것이다. 개혁입법은 사실 이념과도 상관없는 문제이며, 여론조사 결과도 찬성이 더 많다. 사회가 준수해야 할 보편적 원칙을 세우는 일을 정략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경험에 비춰보면, 노조나 좌파는 심하게 비난해도 거의 항의가 없다. 습관이 됐거나 여력이 없는 모양이다. 보수 우파는 다르다. 조금 비판하면 항의와 위협이 즉각적이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우파’로 불리는 것이 그리 명예롭지는 않은 듯하다. 대신 안전이 보장된다. 반대로 ‘진보·좌파’로 분류되는 것도 부끄럽지는 않다. 그러나 위험하고 외롭다.

얘기가 나온 김에 말하자면, 1997년 대선 때는 지금 민주노동당 대표인 권영길 후보에게 투표했다. 다른 후보가 마땅치도 않았지만, 언론노조 운동을 함께 한 그에게 마음의 빚이 있었던 까닭이다. 지난번에는 다른 후보를 선택했다. 이 무원칙을 기회주의라고 비난해도 할 수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치 선택의 스펙트럼은 좌부터 우까지 폭넓기 때문이다.

박래부 수석논설위원 parkrb@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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