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MBC ‘심심풀이’의 ‘두근두근 러브 서바이벌’, SBS ‘실제상황 토요일’의 ‘리얼로망스 연애편지’ 등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주말 저녁을 도배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은 그토록 비난 받던 예전의 프로그램들보다 서로 무서울 정도로 닮아있다. 모두 실질적으로는 독립되었지만 외형상으로는 다른 프로그램에 속해 있고, 두시간 분량을 녹화해 한 주에 한 시간씩 2주에 나누어 방영한다. 또 10명 안팎의 연예인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게임을 하는데 게스트 중에 ‘폭탄’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하나 있고, 커플을 정하기 전에는 꼭 춤을 춘다. 이제는 너무 똑같아서 더 이상 서로 비슷비슷하다고 비난하는 것이 겸연쩍을 정도다.물론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짝짓기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짝짓기 그 자체가 아니다. 방송사는 짝짓기라는 ‘명분’ 아래 신인부터 톱스타들을 모두 부르고, 게임을 시킬 수 있다. 게임을 하다 보면 대화가 빠질 수 없고,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짤막한 코미디와 ‘토크쇼’도 벌어진다. 커플게임이라고 하지만 실상은 서로에 대한 가벼운 폭로전에 가까운 SBS ‘일요일이 좋다’의 ‘X맨을 찾아라’ 코너 속 ‘당연하지’ 게임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것은 외국의 리얼리티 프로그램같은 진지함이나 예측 못한 스토리의 반전이 아니라, 쉴새 없이 등장하는 가벼운 웃음거리들이다. 과거에는 개그맨과 가수가 함께 출연해서 각자의 역할을 했던 대형 버라이어티 쇼가 왁자지껄 웃고 떠드는 자리였다면, 요즘은 그것들을 한데 섞은 짝짓기 프로그램들이 그 역할을 대신 한다.
한국식 ‘짝짓기’ 프로그램은 여기서부터 그 태생적인 한계를 고민하게 된다. ‘두근두근 러브서바이벌’은 출연자들의 심장 박동수를 재면서 출연자들의 마음이 ‘진심’임을 강조하려 하고, ‘리얼로망스 연애편지’는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일생에 단 한 번’뿐이라는 고백의 순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미 짝짓기 프로그램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은 그것을 진실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그렇게 열렬히 ‘구애’하는 출연자들이 불과 2주만 지나면 또 다른 상대방에게 애정 공세를 펼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프로그램들 가운데 진지한 짝짓기대신 대학생들 MT같은 가벼운 분위기를 내는 ‘X맨을 찾아라’가 가장 반응이 좋다는 것은 짝짓기 프로그램의 딜레마를 그대로 보여준다.
버라이어티 쇼의 가벼운 즐거움이 강화될수록 커플 만들기는 그 의미가 사라지고, 반대로 의미를 강조할수록 프로그램은 재미없어지는 아이러니가 계속된다. 그런데 왜 짝짓기냐고? 방송사에서는 그러지 않을까. 외국처럼 막대한 돈이 드는 ‘진짜’ 짝짓기 프로그램을 만들 수도, 그렇다고 옛날 같은 버라이어티 쇼를 만들 수도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요즘 짝짓기 프로그램들은 이도 저도 못하는 ‘한국적’인 상황에서 나온 ‘변종’ 장르일는지 모른다.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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