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순방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이 연일 북핵 문제와 경제에 대한 자신의 속내를 거침없이 털어놓고 있다. 노 대통령은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이어 14일 아르헨티나 동포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한국 경제와 북핵 문제 걱정 많이 되시죠"라고 운을 떼면서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과 경기 회복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했다. 지난 9월 러시아·카자흐스탄, 10월 인도·베트남 순방 때 북핵 문제에 대한 언급을 자제하고 해외 진출 기업 예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던 것과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다.① 북핵: 남북한·4강, 한반도 분쟁 원치 않아 부시에 연일 메시지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아르헨티나 동포간담회에서 "남북한이나 4강 모두가 한반도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분쟁 불원(不願)은 무력 행사나 봉쇄 정책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의미로 12일 미국 국제문제협의회(WAC) 오찬 발언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한미 정상회담(20일)을 앞두고 연일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향해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이날 간담회에서는 미국이 입장 변화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는데도 ‘미국도 분쟁을 원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대북 강경책의 배제를 기정사실화 했다.
노 대통령은 여기서 그칠 것 같지 않다. 브라질 칠레에서도 비슷한 메시지를 천명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언급들이 미국과의 사전 조율에 따른 것은 아닌 듯 하다. 오히려 미국 정부가 대북 선제공격론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우려 때문에 역설적으로 부시의 대전환을 촉구하는 일종의 승부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부시 대통령이 어떻게 대응할 지가 주목된다. 화답하면 북핵 문제 해법의 일대 전환이 이루어지는 것이고 외면하면 상황은 더 꼬이게 된다.
하지만 변수가 하나 있다. 한미 정상의 대좌시간이 30여분간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바로 그것이다. 난제 중의 난제인 북핵 논의가 깊이 있게 이루어지기 어려운 형편인 것이다. 때문에 노 대통령이 한미간 북핵 줄다리기가 길어질 것에도 대비, 일종의 ‘기(氣) 싸움’을 벌이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노 대통령은 또 "북한의 강경 목소리는 체제 동요를 막기 위한 전략·전술적 몸부림"이라고 대북 이해심을 표출한 뒤 "남북간 체제 경쟁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이제 북한이 개혁, 시장경제를 받아들여 먹고 살도록 도와주는 게 우리의 관심"이라는 말도 했다. 북한이 경쟁하고 다툴 대상이 아니라 도와줄 대상이라는 또 다른 대미 메시지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김광덕기자 kdkim@hk.co.kr
② 경제: 연기금 풀리면 경제 잘 돌아갈 것 연기금 처방필요 역설
아르헨티나 동포간담회의 또 다른 화두는 경제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로스앤젤레스 동포간담회에서 "한국 경제를 위기라 말해도 좋다"고 고백한 데 이어 이날 다시 경제난을 인정했다. 대신 우울한 표정이 아닌 밝은 톤의 덕담으로 ‘지금은 어렵지만 미래는 좋을 것’이라는 자신감을 피력하려고 애썼다.
그는 먼저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가 경제성장률 6%를 내놓길래 저도 약 올라서 7%로 올려 내놓았다"며 좌중을 웃게 한 후 "7%는 커녕 지난해 3.1%, 올해 5%에 그쳐 매를 맞아도 싸죠"라고 말했다.
이어 노 대통령은 "그렇다고 한국 경제가 붕괴한다고 말하면 안 된다"면서 이런저런 처방전을 내놓았다. 그 중 하나가 연기금의 주식 투자 허용이었다.
노 대통령은 "전세계 연기금은 주식시장에 투자되고 있고, 외국기업은 한국에 투자하고 있지만 한국은 꽁꽁 묶여 있어서 좀 풀려야 한다"면서 "이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이뤄지면 경제가 잘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KT, 포스코, 국민은행 등 ‘국민기업’ 성격의 민간 기업을 우리 것으로 지켜내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연기금 활용의 필요성을 제기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노 대통령은 "카드 발 금융위기는 작년말로 다 정리됐고, 부동산도 안정을 지켰으며, 금융권도 대체로 안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2001, 2002년 많이 당겨 썼다"며 "카드 많이 발행하고, 부동산 값 올라가고, 은행 빚 얻어다 여관·음식점 많이 지었는데 후유증이 따라와 소비가 확 줄었다"고 말했다. 과거 정권의 부담되는 유산이 정리됐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이제 특혜와 독점이란 용어가 점차 잊혀져 가고 있다. 제 임기가 끝나면 (부패의)‘부’자, (독점의)‘독’자는 없어질 것"이라는 말로 간담회를 마쳤다.
부에노스아이레스=김광덕기자
■메르코수르/ 남미 7國 경제공동체 무관세 자유무역 시행
15일(현지 시간) 한국·아르헨티나 정상회담의 합의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은 한국과 메르코수르(Mercosur)간 무역협정의 체결 타당성에 대한 공동 연구를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생소한 용어인 메르코수르는 ‘Mercado Comun del Sur’라는 스페인어의 줄임말로 직역하면‘남쪽(Sur)의 공동(Comun) 시장(Mercado)’이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등 남미 4개국이 자유무역과 관세동맹을 목표로 1995년 1월 설립한 경제공동체를 말한다. 이들 4개국이 메르코수르의 정회원국이고 칠레 볼리비아 페루 등 3개국은 준회원국이다. 이들 7개국의 면적은 중남미 전체의 71%인 1,460만㎢, 인구는 51%인 2억6,000만명에 이른다. 메르코수르는 자유무역지역과 관세동맹의 중간인 ‘불완전한 관세동맹’ 단계로 전체 품목의 90%에 대한 무관세 자유무역을 시행하고 있다.
우리의 총수출에서 메로코수르가 차지하는 비중은 1.34%(2001년)에 불과하지만 한·메르코수르 간에 자유무역협정(FTA)에 준하는 무역협정이 체결되면 메르코수르는 우리의 주요 수출 시장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게 정부측의 설명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김광덕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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