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 기자회견에서 "요즘 드라마는 통 어른들이 볼만한 이야기는 다루지 않는다"며 분통을 터뜨린 김수현 작가. 그런 그가 "인생의 맛이 달건 시건 혹은 쓰건,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라면 뱉지 않고 삼킬 줄 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겠다"며 내놓은 SBS 창사 특집극 ‘홍소장의 가을’(연출 이종수)이 내리사랑은 알아도 치사랑은 모르는 많은 자식들을 울렸다.14일 밤 3부작이 연속으로 방영된 ‘홍소장의 가을’은 특집극이면서도 21.6%(닐슨미디어리서치)의 시청률로 10위 안에 드는 기염을 토했다. 방송 직후 드라마 게시판에는 ‘오랜만에 제대로 된 드라마를 봤다’는 상찬에서부터 ‘보면서 부모님께 죄송스러워 얼굴이 화끈거렸다’는 반성문까지 수 백 건의 글이 올랐다.
‘홍소장…’은 파출소 소장을 끝으로 정년 퇴임한 홍상수(최불암) 부부를 중심으로 그 자식들과 형제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가난한 집 맏며느리로 동생들 뒷바라지 해가며 자식이라면 무작정 주기만 하던 아내(김혜자)가 아들의 결혼식 축의금을 자기가 갖겠다고 선언하고, 대기업 사장을 지낸 상수의 동생 상준(임채무)이 명예퇴직 당한 뒤 아내(박정수)와 다투면서 갈등이 싹튼다.
‘자기를 위해서는 단 돈 만 원도 써 보지 못한’ 부모 세대가 이제 와 느끼는 허무함을 그려내는 작가의 솜씨는 절묘하다 못해 잔인하다. 자식들이 각자 제 집으로 돌아간 뒤 아내가 홍소장과 소주를 나눠 마시며 "저희들 생각만 하잖아. 우리 생각해 주는 거 털끝 만큼도 없잖아"라며 ‘손해 보는 짝사랑은 안 하겠다’고 선언한다. 축의금을 달라는 아들에게 아내는 "쥐꼬리 봉급에 목 매달고 낮밤 없이 이리 뛰고 저리 뛴 네 아버지, 환갑 나이에 겨우 밥이나 먹을 연금밖에 안 남은 네 아버지 가엾지도 않냐 말야, 이 것아. 이 싸가지 없는 자식들아"라고 쏴 붙인다. 김수현 작가가 갈파한 부모 세대의 아픔과 상실감은 최불암 김혜자 임채무 등 노련한 배우들의, 세월의 부피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연기로 그 무게를 더했다.
그러나 홍소장의 동생 상준이 끝내 자살하는 드라마의 결말은 지나치게 비극적이고 암담한 현실만을 던졌다는 점에서 일부 시청자들로부터 지적을 받기도 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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