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초고속인터넷이 전국적으로 완벽하게 보급된 나라는 지구상에 한국밖에 없다. 선진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들은 요즘 초고속인터넷 망 보급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다.1996년 당시는 사정이 달랐다. 우리나라는 물론 외국에서도 초고속망을 어떻게 구축해야 한다는 방법론도 확립되지 않았다. AT&T와 NTT, 한국통신(옛 KT) 등이 가정마다 광통신망을 까는 광가입자망(FTTH)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 게 고작이었다.
광섬유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겠다. 옛날 전화선은 구리 철사인 동선이었다. 이 동선에 전기 신호를 보내 통신을 했다. 반면 광섬유는 아주 가늘게 뽑은 유리실로 전기 대신에 빛을 이용, 통신을 하는 걸 말한다. 일본의 NTT는 가정마다 광섬유를 까는 장기 계획을 발표한 상태였고, 한국통신도 그 방향을 선호했다.
광섬유를 깔려면 천문학적인 예산이 필요했다. 그래서 이 회사들은 종합디지털통신망 (ISDN)이라는 중간방식에 매달렸다. ISDN은 새로 광섬유를 까는 대신 재래식 전화 선로를 개량된 방법으로 활용하는 것으로 한때 통신 업계가 가야 할 당연한 길로 여겨졌다. 세계 굴지의 통신 회사들은 복잡한 ISDN 교환기를 개발, 보급하는데 거액을 쏟아 부었다. 이는 불과 10년도 안된 얘기지만 ISDN 사업은 결국 참담한 실패로 끝났다. 엄청난 돈과 노력의 산물인 ISDN기술이 못쓰게 된 건 오로지 초고속인터넷의 보급 때문이었다.
두루넷 설립 당시로 돌아가자. 두루넷은 한국전력이 갖고 있는 통신망을 판매하는 중간 소매업자라고 볼 수도 있다. 두루넷이 해야 할 첫번째 과제는 한전의 선로를 전용통신망으로 활용해 기업들에게 되파는 일이었다. 나는 이 일과 동시에 초고속인터넷 사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내 생각에 하나같이 반대했다. 왜냐하면 미국과 일본 유럽에서도 초고속인터넷을 제대로 하는 회사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확신이 있었다. 케이블TV 선로를 활용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판단했다. 케이블TV 선로는 재래식 전화 선로인 동선도 아니고 또 광섬유도 아닌 새로운 선로를 쓴다. 바로 동축(同軸)케이블이다. 이 동축케이블은 전화 선로보다 수십만 배의 통신속도를 자랑하는 반면 케이블TV를 보는 가정에 이미 깔려 있어 선로비를 별도로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장점이 있다.
또 무엇보다 통신속도를 굉장히 빠르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소의 문제나 비효율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미국으로 날아가 빌 게이츠를 만났다. 나는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경제적인 가격으로 초고속 인터넷을 가정에 보급할 수 있다. 처음부터 마이크로소프트가 이 사업에 참여해 시범사업을 전개하자. 마이크로소프트도 장차 초고속인터넷망이 전세계 모든 가정에 보급될 것에 대비, 기술 개발과 함께 사업성을 검토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게이츠를 설득하는 데는 단 15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1997년 6월 나와 한전의 이종훈 사장과 게이츠는 그의 사무실에서 협력 계약서에 서명을 한 뒤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 자리에서 빌 게이츠는 기자들에게 "장차 초고속 인터넷은 미래 정보사업의 주축이 될 것이다. 한국은 두루넷 덕분에 이 분야에서 미국보다 10년은 앞서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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