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문학상 예심 위원들이 올해 후보작으로 뽑은 9편의 단편소설 가운데 3편씩을 나누어 맡아 3회에 걸쳐 선정 의미를 밝힌다. 김형중(강영숙 박민규 천운영), 김동식(김경욱 김영하 윤대녕), 방민호(김연수 정지아 한강)씨의 순서로 이어진다. 편집자주세 사람의 예심 위원들 공히 장편의 흉작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바가 컸다. 작년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작이었던 배수아의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나 김영하의 ‘검은 꽃’ 등에 필적할 만한 묵직한 장편은 눈에 띄지 않았다. 몇몇 작품이 거론되었으나 결국 올해의 예심통과작들은 모두 중·단편들이 되고 말아 적지 않은 아쉬움을 남겼다. 그러나 중·단편의 경우는 스펙트럼도 다양했고, 작품들의 수준 역시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수준작들이 많았다. 게다가 아직 그 새로움의 전모를 파악하기 힘든 독창적인 신인들의 작품도 적지 않았다. 애초에 다섯 편을 염두에 두고 진행된 심사가 그 배에 가까운 아홉 편을 골라내는 선에서 마무리된 것도 그런 이유였다. 덕분에 심사는 다소 난항을 겪었지만 아주 기분 좋은 난항이었다. 일차로 강영숙, 박민규, 천운영의 작품 선정 경위를 밝힌다.
■강영숙 ‘태국풍의 상아색 샌들’/ 다국적 자본주의 시대, 암울한 내면풍경
‘태국풍의 상아색 샌들’은 그간 작가 강영숙이 일구어 온 소설세계를 집약하고 있는 작품으로 읽혔다. 은유적 계열체를 형성하지 않으면서 끝없이 환유적으로 쇄도하는 문체, 서울이면서 동시에 현대 도시 일반이기도 한 무국적 도시의 전망 없는 주체들, 그리고 화려한 외관에도 불구하고 어딘가 모르게 불길하고 그로테스크한 축제 분위기 등이 그렇다.
최근 우리 소설들이 반응하기를 게을리 하고 있거나, 불충분하게만 반응하고 있는 다국적 자본주의 시대 주체들의 암울한 내면풍경을 이 작품처럼 냉혹하고 담담하게 묘사한 작품은 찾기 힘들다. 심사위원들 모두, 불모이자 동시에 인공낙원인 강영숙의 도시가 우리 문학이 아직 제대로 수행해내지 못하고 있는 다국적 후기 자본주의와의 싸움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에 대한 기대가 컸다.
■박민규 ‘카스테라’/ ‘B급 문화의 전복적 상상력’ 창작법 엿보여
박민규는 강영숙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 소설 문학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작가다. 그는 그간 한국 소설을 지배해 왔던 엄숙주의를 조롱하면서 소위 B급 문화의 상상력을 대대적으로 차용한다. 작품 ‘카스테라’는 바로 그러한 소설 쓰기에 대한 일종의 선언문으로 읽히는 데가 있다.
그가 ‘카스텔라’를 의도적으로 ‘카스테라’로 오기(誤記)한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지상에서 가장 못마땅한 것들과 가장 소중한 것들을 닥치는 대로 모두 냉장고에 집어넣어서는, 그로부터 오롯한 ‘카스테라’ 하나(한 편)를 얻어낸다는 발상이 박민규답다. 게다가 그렇게 얻어진 작품이 엄숙하고 정연한 ‘카스텔라’가 아니라 표기법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은 B급 ‘카스테라’라고 하는 발상 또한 전복적이다. ‘대왕오징어의 기습’과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포함한 다른 몇 작품도 눈에 들었으나 굳이 ‘카스테라’를 예심 통과작으로 정한 사정도 이와 같다. 이 작품은 박민규가 누설한 박민규의 소설 작법이다.
■천운영 ‘명랑’/ 모계 공동체의 가족 판타지… 변화 징후
천운영은 언제나 평균 이상의 작품을 써내는 작가다. 그리고 그 저력 너머에는 취재를 통해 ‘생산된’ 직접 체험이 놓여 있었다. 그러던 작가가 최근작들에서는 체험의 직접성을 다소 누그러뜨리는 대신 환상성, 특히 변형된 가족 판타지를 도입하는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
올해 출간된 창작집 ‘명랑’에 실린 ‘늑대가 왔다’가 그 전형적인 경우다. ‘명랑’의 경우도 가족 판타지의 변형으로 읽혔다. 그러나 이 작품의 가족 판타지는 부친이 개입하지 않는 가족 판타지, 삼대에 걸친 모계 공동체의 가족 판타지, 그래서 오이디푸스 서사를 허용하지 않는 여성형 가족 판타지다. 게다가 천운영 작품으로서는 이례적으로 구체적인 생활의 곤경과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작품이기도 했다. 요컨대 이 작품은 전작들에서 천운영이 보여준 성역할의 전도라고 하는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지금 작가가 시도하고 있는 어떤 변화의 징후로도 읽혔다. ‘늑대가 왔다’가 가진 여러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명랑’을 본심에 올리기로 합의한 저간의 사정도 이와 같다.
김형중(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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