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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중국출신 미국 교수가 고백하는 "잘못 태어난 마오쩌둥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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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 중국출신 미국 교수가 고백하는 "잘못 태어난 마오쩌둥의 아이들"

입력
2004.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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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위병/션판 지음·이상원 옮김/황소자리 발행·1만8,700원마오쩌둥(毛澤東) 사후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1966~76년)을 ‘극좌적 오류’였다고 공식 평가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더 이상 공개적으로 문혁의 아픈 기억을 말하지 않는다. 중국현대사를 그려낸 많은 영화들이 문혁의 초상을 담고 있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파헤친 경우는 거의 없다. 문혁은 중국인에게는 그냥 묻어두고 싶은, 그리고 절대 씻을 수 없는 ‘외상(트라우마)’인지 모른다. 그 문혁의 한가운데에 ‘홍위병(紅衛兵)’이 있었다.

마오쩌둥(毛澤東) 사후 중국공산당은 문화대혁명(1966~76년)을 ‘극좌적 오류’였다고 공식 평가했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더 이상 공개적으로 문혁의 아픈 기억을 말하지 않는다. 중국현대사를 그려낸 많은 영화들이 문혁의 초상을 담고 있지만, 그것을 정면으로 파헤친 경우는 거의 없다. 문혁은 중국인에게는 그냥 묻어두고 싶은, 그리고 절대 씻을 수 없는 ‘외상(트라우마)’인지 모른다. 그 문혁의 한가운데에 ‘홍위병(紅衛兵)’이 있었다.

‘홍위병-잘못 태어난 마오쩌둥의 아이들’은 철도 들지 않은 열 두 살에 홍위병에 가담해 문혁의 격랑과 그 이후 중국사회의 변화를 겪어낸 한 중국인의 자전 기록이다. 잘못된 혁명에 젊음이 찢기고, 정치권력투쟁 때문에 삶의 희망과 의지가 꺾이는 20년 세월을 견뎌낸 저자 션판(沈汎)은 탈출구로 미국을 택했다.

결국 꿈을 이루었고 ‘적국’의 땅에서 번듯한 대학교수가 되었지만, 그는 어린시절의 고통스런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자신이 보고 겪은 홍위병의 기억을 낱낱이 끄집어내기로 했다. 마치 40년 전 일기장을 들춰보는 듯한 생생한 묘사, 정제되면서도 날렵한 문장은 430쪽을 넘어서는 이 책을 손에 드는 순간 놓지 못하게 만든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책이 문혁을 직접 겪은 중국인이 쓴 홍위병에 대한 가장 상세한 기록물 중 하나라는 점이다.

‘모서리를 돌아서자 축구장 한가운데에 장관이 펼쳐졌다. 산더미를 이룬 책들, 2층 높이는 될 법한 책더미가 불길에 싸여 있었다. 불꽃은 하늘을 향해 몸을 뒤흔들며 춤을 춰댔다. 주위에는 내 또래가 대부분인 사람 수십 명이 둘러서서 불기둥에 책을 던져 넣느라 분주했다.’ 홍위병 ‘혁명운동’의 첫 장은 마치 분서갱유와 다를 바 없이 시작했다. 혁명가 집안출신 션판과 또래 아이들은 책가방에서 열번도 더 읽은 동화책을 꺼냈고, 홍루몽 같은 고전을 불길 속에 던져 넣었다. ‘홍위병에게 명하노니, 곳곳에 숨어있는 적들을 찾아내 처단하라’는 지도자 마오의 붉은 표지 책이 아니면 모두 ‘부끄러운 봉건 잔재’였다.

다음 단계는 반혁명분자, 부르주아 처벌이다. 그런데 그 행태가 전직 장성 등 표적인물을 사냥해 공개로 린치 하거나, ‘인민의 소유가 되었다’며 자본가의 집에서 그랜드피아노를 쪼개 모닥불로 쓰는 식이었다. 붉은혁명위원회가 ‘집털이’해 끌고 간 베이징대병원 외과의사에게 숨긴 재산을 자백하라고 강요하며, ‘산 채로 메스로 배를 가르고 거기에 간장이며 고춧가루물을 붓는’ 문혁은 ‘혁명(革命)’이라는 글 뜻 그대로 수 십만 명의 목숨을 난도질하는 꼴이 돼가고 있었다.

짧은 순간 ‘붉은 테러’에 취했던 션판은 뜻하지 않게 터져 나온 피비린내, 생사를 건 홍위병끼리의 투쟁에서 문혁을, 또 위대한 지도자 마오의 권위를 의심하게 된다. 홍위병이란 실은 마오가 류사오치(劉少奇), 덩샤오핑(鄧小平)과의 권력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마구 휘둘러댄 칼에 불과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 뒤로 션판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초근목피로 연명하던 샨시의 시골마을로 하방되어 버틴 4년의 세월과 누구의 출입도 허용하지 않는 흰 벽으로 둘러쳐진 비행기 부품공장에서 보낸 6년의 시간이었다. 그동안 그를 지탱해준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신이 불길에 던져 넣은 그 책들이었다.

홍위병 초창기 자신이 ‘단죄’했던 자본가의 딸 린링과 결혼해 저자는 84년 말 우여곡절 끝에 미국으로 떠나는 비행기를 탔다.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나는 위대한 지도자와 싸워 이겼다. 더 이상은 혁명가 흉내를 내지 않아도 좋았다. 관료들의 비위를 맞출 일도, 위대한 지도자와 당의 가공할 권력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었다.’ 젊은 날의 고통과 상처, 그리고 끝내 이겨내고만 바로 그 승리의 기쁨까지 션판이 가슴에 묻어두었다가 토해낸 기억들이 문혁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증언하고 있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어린 홍위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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